[대한경제=김호윤 기자] 미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심결로 일단락된 듯했던 ‘보톡스 전쟁’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메디톡스가 미국 최고 로펌 중 하나인 ‘크라바스 스웨인&무어’를 선임하며 항소를 예고한 것이다.
보톡스로 더 친숙한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균이 생산하는 신경 독소의 일종으로 안면부위 주름 개선 등 미용·성형 시술에 주로 쓰인다.
사진: ITC edis 화면 캡쳐 |
이번 소송은 2022년 3월 메디톡스가 휴젤과 휴젤아메리카, 크로마파마를 상대로 ITC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메디톡스는 “휴젤이 자사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 등 영업비밀을 도용해 제품을 개발했다”며 수입금지 명령을 요청했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메디톡스는 당초 주장했던 균주 절취와 영업비밀 유용 주장을 철회했고, 인력 유출 등의 쟁점만 다뤄졌다. 결국 지난 10월 ITC는 “휴젤의 위반 사실이 없다”며 휴젤의 손을 들어주는 최종 심결을 내렸다.
관건은 메디톡스의 항소다. 메디톡스는 ITC 판결에 대해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최종심결 후 60일 이내인 9일(현지시간)까지 연방항소순회법원에 항소 의향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점은 메디톡스가 ‘크라바스’ 로펌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 로펌은 애플-퀄컴 소송에서 퀄컴을 대리한 미국 최정상급 로펌으로 꼽힌다. 메디톡스의 이러한 움직임은 항소 과정에서 더욱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메디톡스가 일단 항소 의향서를 제출한 뒤, 40일에서 70일 이내에 구체적인 항소 이유서를 제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추가 기간 연장도 가능해 소송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휴젤의 미국 시장 공략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휴젤은 올해 2월 FDA로부터 자사 보툴리눔 톡신 제제 ‘레티보’의 품목허가를 받았다. 이어 7월부터 미국 현지 선적을 시작해 3분기에만 100억원의 실적을 올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휴젤의 목표는 야심차다. 3년 내 미국 시장점유율 1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올해 약 6조3800억원 규모로, 글로벌 시장의 60%를 차지한다. 세계 최대 시장인 만큼 휴젤 입장에서는 반드시 공략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다.
하지만 메디톡스의 항소로 인해 휴젤의 미국 시장 확대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메디톡스의 항소 대상이 ITC이지만, 실제 항소가 진행될 경우 휴젤 역시 법적 대응이 필요해 경영 자원이 소송에 분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툴리눔 톡신 업계는 이번 분쟁의 결과가 향후 국내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대웅제약도 미국 시장에 진출한 만큼, 이번 소송의 향방이 업계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단순한 법적 공방을 넘어 양사의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된다”며 “특히 미국이라는 최대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걸린 만큼 양사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승부”라고 강조했다.
김호윤 기자 khy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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