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도 길거리 사람 없고 ‘쓸쓸’
공실률 40% 육박…강남구 특단의 대책
일조권 규제 완화 ‘특별가로구역’ 지정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일대에서 공실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 사진 : 안윤수 기자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자라(ZARA)도 못 버티고 나갔다니깐. 말 다 한 거지.”
17일 오후. 신사역 8번 출구에서 이어지는 가로수길에 들어서자 간판을 떼어낸 흔적들로 너저분하게 방치된 공실 상가들이 넘쳐났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화려한 조명과 장식들로 들떠야 할 거리인데도 가게마다 손님들의 발길은 뚝 끊긴 채 상인들의 짙은 한숨만 흘러나왔다.
2007년부터 가로수길 대로변 1층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A씨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거짓말처럼 외국인 손님이 줄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한 집 건너 한 집이 공실이 될 정도로 가로수길 상권이 죽었다가 최근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면서 조금 살아나나 싶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라고 말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는 현재 17평 남짓의 상가에 보증금 2억원, 월세 1000만원을 내며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가로수길은 한 때 패션의 성지였지만, 가파른 임대료 상승과 성수, 한남 등 가로수길에 대항하는 ‘힙’한 상권에 밀리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실제 지난 10월 글로벌 부동산컨설팅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로수길 공실률은 39.4%를 기록하며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방송인 강호동씨가 가로수길 중심부에 건물을 구매했다가 ‘공실 폭탄’에 시세차익도 건지지 못한 채 건물을 처분했다는 보도에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가로수길에서 운영중인 단기임대 형태의 깔세 매장 / 사진 : 안윤수 기자 |
이날 가로수길을 걷다 보니 ‘깔세 매장’도 쉽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간판 없이 단기로 가격을 적어놓은 인쇄물만 바닥에 붙여놓은 채 떨이 제품을 파는 형태의 매장이다. 인근에서 악세사리 매장을 운영하는 C씨는 “가로수길하면 강남권의 명품거리, 젊음의 거리 느낌이 나야 하는데 이제는 단기 매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니 예전과 같은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사역 인근 중개업자 B씨는 “코로나19 당시에도 월세를 내리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분들이 많았다”라며 “월세를 아예 내릴 바엔 단기를 받겠다고 해서, 하루 33만원짜리 팝업스토어나 깔세 매장과 같은 것들로 공실들이 사용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신사동에선 높은 임대료를 피해 대표 상권인 애플스토어를 기점으로 중심가인 가로수길보다 임대료가 낮은 ‘세로수길’과 ‘다로수길’ 등으로 상권이 번지고 있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들은 가로수길과 한 블록 차이지만, 임대료가 3분의 2 정도 수준에 머무른다. 중개업자 B씨는 “가로수길 중심가를 통임대하려면 보증금 10억에 월 1억 1000만원 이상의 임대료를 내야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절반 가까이 월세가 줄어들기 때문에 유명한 브랜드들도 중심가보단 뒷골목을 선호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주요 상권 공실률 / 자료 :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보고서 갈무리 |
이처럼 과거에 활기가 넘치던 가로수길이 지속적으로 ‘방치’되고, 상권이 ‘침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근 강남구는 특단의 대책도 내놨다. 가로수길에 들어선 건물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그간 가로수길은 주거지역으로 분류돼 일조권 적용을 받았다. 그런데 구는 17일 이곳을 전국 최초로 일조권 규제를 완화한 특별가로구역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구 관계자는 “가로수길 건물은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해 층수가 올라갈수록 건물이 점점 좁아지는 ‘계단식 모양’으로 지어지는 한계가 있어 상업공간으로 활용도가 낮았다”라며 “앞으로 건축물 높이와 일조권 규제 완화로 기존 건물의 증축과 리모델링도 가능해 가로수길에 창의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사동 가로수길 일대의 비어있는 건물 / 사진 : 안윤수 기자 |
다만 가로수길에서 만난 상인들은 입을 모아 과거 가로수길의 지위를 회복하려면 ‘임대료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3년동안 가로수길에서 옷가게를 운영했다는 D씨는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임대료를 감면해준 착한 건물주를 만난 가게 사장들은 장사를 이어 나갈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다 이곳을 떠나야 했다”라며 “‘내리지 않고 버티면 된다’는 건물주들의 자신감이 결국은 가로수길의 영구적인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박호수기자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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