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사업 항목에 ‘재생에너지 신사업’ 포함
해상풍력 발전사업 위한 근거로 해석
“공공 사업자 필요” vs “심판이 경기 뛰겠다는 것” 이견
학계 “망중립 문제부터 해소해야”
제주 한림읍 인근 해상에 설치된 100㎿ 규모 해상풍력발전 단지./사진:두산에너빌리티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국내 해상풍력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전력의 발전사업 참여 여부를 두고 전력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한전은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발전사업에 손을 뗐지만, 해외 개발사가 주도하는 국내 해상풍력 시장에서 최대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면서다.
다른 한편에선 전력망 운영과 전력판매를 독점하는 한전이 발전사업까지 병행하면 망중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신규 수익원 발굴을 위해 발전사업에 참여하려면 전력시장에서 영위하는 독점적 지위를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전 사업 항목에 ‘신ㆍ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신사업 발굴 및 진흥 사업’을 신설하는 내용의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발전업계에서는 해당 법안이 한전의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위한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정부는 최근 8GW 규모의 풍력 발전물량을 2026년까지 공고하고, 공공주도형 별도 입찰시장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한전도 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한전은 전기사업법상 송전ㆍ배전ㆍ전기판매사업자 지위만 있을 뿐 발전사업 허가는 받지 못했다.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에 따라 발전사업을 자회사로 분리한 뒤 20년 넘게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발전사업에 우회적으로 참여한 사례는 존재한다. 지난달 상업운전에 들어간 제주한림 해상풍력(설비용량 100㎿)의 경우 지분 29%를 출자했고,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1.2GW), 신안 해상풍력(1.5GW) 사업 등도 추진 중이다.
2022년 12월부터는 테스크포스(TF)팀으로 운영되던 해상풍력 조직을 해상풍력사업단으로 승격해 관련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김동철 사장도 취임 직후부터 “해상풍력 같은 대규모 사업은 자금력과 기술력, 해외 파이낸싱 경험을 갖춘 한전이 주도해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조 단위 투자금이 들어가는 해상풍력은 규모 있는 국내 플레이어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 국내에선 대규모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준공 및 운영까지 전체 사이클을 경험한 사업자가 부재해 한전 역할론이 나오는 것 같다”라며, “한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해상풍력 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한전 본사./ 사진:한전 |
전기사업법상 동일 사업자는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을 할 수 없다. 한전이 SPC 사업이 아닌 주체적인 발전사업자가 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2020년 신재생 발전사업의 경우 이를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진 못했다.
풍력업계 관계자는 “이번 한전법 개정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근거를 만들고, 향후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이어가지 않겠나”라면서, “해상풍력 산업의 공공성을 명분으로 발전사업 참여가 논의되고 있지만, 이는 심판이 선수로 뛰겠다는 거다. 오히려 시장경제를 흐리는 일”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공공기관운영법 등에 따라 공공기관이 SPC에 출자를 하려면 산업부 및 기재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해야 하고, 예비타당성조사 통과도 필요하다. 출자 가능한 지분 또한 엄격히 정해져 있다. 반면, 발전사업자가 되면 전기사업허가를 먼저 받고, 추후 예타를 신청하는 등 자율성이 커진다. 이 경우 한전은 송전ㆍ배전ㆍ전기판매사업에 이어 발전사업까지 포괄해 전력업계 내 독점적 지위가 강화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지금도 전력망 포화로 발전사업 허가가 보류되고, 발전제약이 걸리고 있는데, 망 운영을 독점하는 한전이 직접 발전까지 하면 당연히 본인 사업의 계통 연결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겠나”라며, “이로 인해 망중립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 한전에 발전사업 허가를 내주는 건 전력산업구조개편을 단행한 24년 전으로 후퇴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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