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 미국ㆍ가상자산 시장으로 이동
경기부진 우려 지속ㆍ정치불확실성 여전
[대한경제=권해석 기자]올해 국내 증시가 부진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로는 외국인투자자의 이탈이 가장 먼저 꼽힌다. 외국인투자자는 올해 하반기에 국내 주식을 폭탄 수준으로 쏟아내면서 지수 하락을 이끌었다. 여기에 국내 개인투자자들도 미국 주식이나 가상자산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전반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의 수급 여건을 어렵게 만들었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액은 21조원이다. 올해 상반기에 외국인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22조4000억원 가량의 주식을 순매수했는데, 불과 반년만에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외국인투자자가 국내 주식을 사 모으던 상반기에는 코스피 지수가 5.37% 상승했지만, 외국인투자자가 국내 주식을 팔기 시작한 하반기에는 지수가 무려 13.76%나 추락했다. 올해 하반기에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가 매수 우위를 보인 달은 지난 7월(1조7000억원)이 유일하다. 지난 9월에는 한 달간 외국인투자자의 순매도액이 7조9000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상장주식의 시가총액도 크게 감소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의 시가총액은 각각 1963조3290억원과 340조1450억원이다. 지난 7월1일 코스피와 코스닥의 시가총액은 각각 2289조6310억원과 411조6040억원으로, 코스피 시총은 326조3020억원, 코스닥 시총은 71조4590억원이 감소했다. 올해 하반기에만 국내 증시 시총이 380조원 넘게 사라진 셈이다.
외국인투자가 철수가 가장 거셌던 곳은 반도체주다. 외국인투자자는 올해 하반기 삼성전자 주식을 18조5000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전체 외국인 투자자 순매도액의 87% 가량이다. 지난 7월 이후 외국인투자자는 SK하이닉스 주식도 2조1000억원 가량을 순매도했다. 지난 7월 488조3280억원이던 삼성전자 시총은 올해 말에는 317조5920억원으로 축소됐다.
지난 9월부터 반도체 경기 위축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주요 기관들이 삼성전자 등 반도체주의 목표가격을 하향조정하기 시작했고, 외국인투자자의 이탈 속도도 빨라졌다.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나라 경제 전반으로 옮겨갔다. 한국은행이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1.9%로 예측하는 등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에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외국인투자자 이탈을 막지 못했다.ㅐ
이런 가운데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시장이나 가상자산 시장으로 대거 이동한 것도 국내 증시 기반을 약하게 만들었다.
올해 1월 673억달러던 국내투자자의 미국 주식보관금액은 지난 27일에는 1178억달러로 높아졌다. 지난달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14조9000억원으로, 같은 달 코스피ㆍ코스닥(16조9000억원) 거래대금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내년 국내 증시도 만만치 않은 환경이 조성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당장 경기 부진의 우려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 1월 미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쏟아내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 최근 원화 약세 현상의 배경인 정치 불안이 자칫 장기화되면 국가 신용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수 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투자자 유출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가는 경기를 선반영한다는 점에서 최근 외국인투자자의 이탈은 경기 부진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면서 “실물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주식시장 측면에서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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