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오는 23일 예정된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해선 안 된다는 영풍ㆍMBK파트너스 연합의 의안상정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내놓은 카드인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안에 사실상 제동이 걸린 셈이어서 이번 경영권 분쟁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고려아연 종로사옥/ 사진: 고려아연 제공 |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임시주총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가 통과되더라도 이를 통해 이사를 선임할 수는 없게 됐다.
영풍ㆍMBK 연합은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두고 최 회장 등 현 경영진과 다투고 있다.
앞서 영풍ㆍMBK 연합은 이번 임시주총에서 ‘단순투표’ 방식으로 이사 14명을 신규 선임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과 영풍ㆍMBK 연합 측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영풍ㆍMBK 연합이 추천한 인사들이 모두 이사회에 진입하면 이사회를 장악하는 동시에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다.
이에 최 회장의 사실상 가족회사인 유미개발이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 안건을 임시주총 안건으로 올리려고 하자 영풍ㆍMBK 연합은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고 원하는 후보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후보의 선임 가능성을 높여 소수주주 보호 방안으로 활용된다.
집중투표제가 통과되면 특정 이사 몇 명에게 의결권을 집중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돼 의결권 지분율이 적은 쪽에서도 막판 뒤집기가 가능해진다는 게 최 회장 측의 계산이었다.
현재 영풍ㆍMBK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40.97%를 갖고 있다. 자사주 등을 제외한 의결권 지분으로는 46.7%다.
반면 최 회장과 우호세력 측 지분은 34% 안팎, 의결권 기준으로는 39∼40% 수준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유미개발이 집중투표 청구를 했던 당시 고려아연의 정관은 명시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며 “결국 이 사건 집중투표청구는 상법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적법한 청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법원 결정에 대해 영풍ㆍMBK 연합은 “23일 임시주총을 통해 이사회의 개편과 집행임원제도의 도입 등 실질적인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영풍ㆍMBK 연합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은 이번이 4번째였다. 앞서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매입과 자기주식 공매 개수를 금지해달라는 1ㆍ2차 가처분은 법원에서 기각됐고, 자사주 대여ㆍ양도를 금지해달라는 3차 가처분은 취하했다.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ㆍ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세웠다. 현재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경영을 맡고 있다.
그러나 2022년 최 회장 취임 이후 최씨 일가와 영풍그룹 장씨 일가 간에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지면서 두 회사는 경영권 갈등을 빚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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