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 첫날 행정명령들에 서명하고 있다. /EPAㆍ연합 |
[대한경제=강성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규정하며 북한과의 재협상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2기 정부 수립 후 대북 정책 로드맵 확립과 집행에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취임 첫날부터 파격적 발언을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외교ㆍ안보 컨트롤타워 공백에 빠진 우리나라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트럼프는 이날 취임식 후 78개 행정명령에 대한 서명을 이어가던 중 버락 오바마 등 전직 민주당 대통령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북한에 대해 “아니다”라며 “북한은 잘 풀렸다”고 반박했다. 이어 “나는 김정은에게 친절했다”며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를 좋아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제 그는 ‘핵 보유세력’(nuclear power)이 됐다”면서 “그가 나의 귀환을 반기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언급은 미국 현지에서도 기존 ‘정치적 문법’을 깬 이례적 발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트럼프의 발언은 공식적인 정책 선언이라기보다는 즉흥적인 발언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워싱턴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이날 발언으로 1기 때 견지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기조에서 한발 물러나 핵 감축ㆍ동결 등 현실적ㆍ단계적인 ‘스몰딜’에 나설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북한과의 재협상에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 북미 담판 시계가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예측보다 빠르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부상하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무너진 외교 컨트롤타워를 시급히 재건하고 미북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는 ‘비핵화’ 견지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며 뒷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21일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세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 국제사회와 계속 긴밀히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발언에 대해 비핵화라는 가치와 명분보다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는 행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난 그(김정은)가 엄청난 콘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많은 해안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콘도’는 북한이 올해 6월 개장을 목표로 관광단지를 조성 중인 원산 갈마지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김 위원장과의 1ㆍ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부동산 입지가 훌륭하고 원산이 리조트 개발에 적합한 지역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행정명령 서명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의 핵심 정책인 ‘고관세’ 기조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는 미국 국경과 맞닿아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그들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불법 이민자)과 펜타닐이 들어오도록 내버려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치는 ‘2월1일’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북한 핵보유국 인정에 고관세 정책,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 부과’ 등 트럼프가 공언한 ‘전대미문’의 정책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강성규 기자 g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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