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사진: 연합뉴스 |
[대한경제=강성규 기자] ‘12ㆍ3 비상계엄’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23일 헌법재판소 윤 대통령 탄핵심판 첫 증인으로 나서 계엄의 위헌ㆍ위법성을 부정하는 윤 대통령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을 내놓았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오후 헌재 4차 변론기일에 서 계엄 후 국회 역할을 대신할 ‘비상입법기구’ 설치를 위한 예산 확보 등 지시사항이 담긴 쪽지를 자신이 작성했으며, 이를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전달한 것은 윤 대통령이 아닌 ‘실무자’라고 주장했다.
‘포고령 1호’에 대해서도 자신이 직접 작성했다며 “과거의 포고령을 참고한 것”이라고 했다. ‘전공의 처단’ 내용이 담긴 포고령 5항도 직접 작성했다며, 의료 시스템 붕괴를 우려해 업무복귀를 명령하는 차원이었다고 답했다.
검찰 수사 등 과정에서 쪽지 전달자와 포고령 최종 검토자로 윤 대통령을 지목했던 김 전 장관의 당초 입장과는 엇갈린 증언들이다.
헌재는 이날 비상입법기구 쪽지에 대해 “증인신문을 통해 진정성이 성립되고, 여러 증거 법칙에 어긋남이 없다”며 증거로 채택했다. 윤 대통령 측은 “모르는 서면”이라고 반발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쪽지에는 예비비 확보ㆍ국회 보조금 차단ㆍ긴급재정 확보 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장관은 쪽지에 대해 ‘대통령이 검토하고 지시해야 가능한 것으로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한것 뿐이죠’라는 윤 대통령측 송진호 변호사의 질문에 “평상시 대통령께서 (법안 통과가) 막혀있는 거 뚫는게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말씀을 몇 번 들은 기억이 나 정리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김 전 장관이) 계엄을 위해선 수도권 부대가 모두 들어와야 한다고 했는데, 윤 대통령은 소수만 동원하라 했나’라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본청 질서 유지를 위해 대통령이 최초 지시한 병력은 280명이라며 “국회 울타리를 막기 위해선 5000명 정도가 필요하고, 내부에는 2000~3000명 정도가 있어야 제대로 봉쇄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경찰력 동원 논란에도 “병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찰력을 보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탄 투입에 대해서는 “군부대가 출동하면 개인 화기와 실탄 휴대는 기본”이라면서도 “이번에는 안전 문제로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대대급이 통합해서 보관했다. 안전 때문에 개인 휴대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당시 이를 막기 위해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없다”며 의원이 아닌 ‘(군) 요원’을 빼내라고 한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김 전 장관은 계엄 선포 배경에 대해선 “야당의 국정 침탈이 마비 수준을 넘어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한 지경이었다”며 “비상계엄의 형식을 빌려 망국적 위기 상황을 주권자인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윤 대통령이 계엄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 예산 삭감 상황을 보며 대통령으로서 묵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했다며 “비상계엄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엄 선포를 결심했다”고 옹호하기도 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4차 변론에 윤석열 대통령과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출석해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윤 대통령이 직접 김 전 장관에 질문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포고령을 법적으로 검토한다면 손댈 게 많지만 계엄이 하루 이상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상징적인 측면에서 그냥 놔두자 한 게 기억나냐’고 질의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이 평상시보다 꼼꼼하게 안 보시는 걸 느끼긴 했다”며 “평상시 대통령이 업무를 하면 꼼꼼하게 법전부터 찾는데 안 찾았다”고 답했다.
또 ‘실현가능성은 없는데 상징성이 있으니 놔두자’고 한 것으로 기억되고, ‘전공의 (업무복귀 지시)는 왜 넣냐고 했는데 기억나냐’고 묻자 김 전 장관은 “그렇게 말하니 기억난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국회 측의 반대신문에선 ‘국무회의 당시 동의한 사람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있었다”며 “누구인지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답했다. 또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비상계엄 논의를 위해 몇차례 만났고,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게 부정선거 관련 자료 수집을 지시한 사실도 인정했다.
계엄 당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받은 쪽지에 대해서도 국내에 있는 외교 사절들에게 계엄 지지를 부탁하는 취지로 자신이 직접 작성해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이날 국회 측의 증인 신문은 거부했다가 번복해 신문에 응했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입장에 응하는 취지에서 윤 대통령 측의 신문은 받았지만, 국회 측 신문은 형사 재판을 앞두고 ‘사실왜곡’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그렇게 하겠다면 할 수 없는데 일반적으로 판사는 증인 신빙성에 대해 낮게 평가한다”고 말하자 김 전 장관은 “그렇다고 해도 증언은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문 대행은 10여분 간 휴정을 선언했으며, 김 전 장관은 이후 윤 대통령측이 “우리도 신문했으니 국회측도 받아달라”고 요청하자 증인신문에게 응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한편, 헌재는 이날 12ㆍ3 계엄 사태 관련자들의 수사기관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련 국가정보원 기밀문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측이 주장하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을 들여다보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강성규 기자 g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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