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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스마트폰의 통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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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2-11 05:00:13   폰트크기 변경      

접촉이 아닌 접속의 세상이 왔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연결되는 망(wiring) 속의 세상이다. 맛집 정보나 여행 경로를 검색해서 주고 받고,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어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내 손안에 가득하다. 압도적인 자연 풍광이나 사람들의 기묘한 일상이 놀랍고도 흥미로운 장면에 담겨 무한대로 펼쳐진다. 유발 하라리나 도올 김용옥의 강의처럼 돈 주고도 접하기 어려운 교훈적이고 쓸모있는 컨텐츠도 널려 있다.


요즘엔 짧고 자극적인 영상 컨텐츠가 대세다. 멋진 뒤태를 뽐내며 걸어가는 여인, 사자와 악어가 뒤엉킨 사생결단의 전투, 작은 몸집의 여성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폭식하는 장면들이 수백 만의 추종자를 거느리며 세상에 노출된다. 물론 자극에 반응하고 욕망에 충실한 것이 인간이다. 전자오락실에서 블록을 깨고 고수를 격파하며 외롭고 버거운 세상을 잠시라도 잊는다면 그것만도 봐줄 이유가 된다.


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라고 했다. 어두워야 별이 빛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두우면 그늘도 생긴다. 스마트폰 속의 세상이 그렇다. 연대와 결속의 가능성으로 출발했던 디지털 공간이 상업욕과 인정욕과 과시욕으로 부풀어 가식과 허영의 전시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정보로 사람들을 낚아 채는 상인들의 저열한 장사속은 그렇다고 치자. 여행을 떠난다며 차창을 열고 찍은 사진 속에 슬며시 외제차 로고가 박힌 차키를 노출시키는 부류들이 자주 보인다. 그들의 사진 속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명품가방, 푸른 야자수와 칵테일, 화려한 식탁 위에 진열된 오마카세가 행복해 죽을 듯한 주인의 표정과 함께 번쩍거린다. 이것들은 세속적인 인생들이 추종하는 한순간의 신기루일 뿐 삶의 진면목은 아니다. 이런 찰나적 허상을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며 질시와 우울감으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청소년의 스마트폰 접속 시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이런 문제점을 막아보려는 고육지책이지만 부작용은 몇가지 더 있다.

먼저 운동성의 부족이다. 이것은 게임에 빠져든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침대에 누워 빈둥대며 남의 방을 기웃거리다 밤잠을 놓치거나 휴일 오전이 순삭된 것은 누구나의 경험이다. 다음은 집중력의 분산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발걸음수에 맞춰 쌓이는 현금 포인트를 살피거나 하던 일을 멈추고 경품으로 제공되는 선물 박스를 수시로 뒤져보는 경우다. 넷플릭스를 보라. 영화 한편값으로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영화의 선망성이나 몰입감은 떨어졌다. 과다 섭취는 무감각의 근원이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컨텐츠 문제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늘어나는 재소자의 상당수가 청소년 마약범이다. 스마트폰 깊은 곳에 숨겨진 도박 컨텐츠가 마약 정보와 유통의 주된 공급망 중 하나다.


마지막 걱정 거리는 사유 능력과 창의성의 퇴화다. 인공지능으로 손쉽게 얻어지는 맞춤 정보는 세상의 답을 재빨리 던져주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아이디어의 모음집에 불과하다. 자발적 사유로 최초의 관점에 도달하려는 인간이 프롬프트에 적절하고 수준 높은 질문지를 써내야 비로소 인공지능의 의미가 생긴다. 인공지능의 유용성을 좌우하는 인간의 사유 능력은 무엇에 의해 좌우될까? 인문과 예술에 대한 안목이다.


미시간 주립 대학교 연구팀이 1901년부터 2005년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을 조사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인문적 예술적 취향이 노벨상을 타지 못한 학자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음악적인 취향은 2배, 미술 관련 취향은 7배, 공예 관련 취향은 7.5배였고 글쓰기 관련 취향은 12배, 공연 관련 취향은 무려 22배였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라칸’이라는 학자는 전문성이 떨어질수록 창의성은 오히려 상승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당신의 삶에 인문과 예술이 융합된 대중문화적 취향을 편입시켜라. 인공지능 할아버지가 온들 어제 저녁 당신이 취한 품격높은 문화적 행로를 알아 맞출 수 있겠는가?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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