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김호윤 기자] 글로벌 제약사들이 ‘근육 보존’을 핵심 키워드로 차세대 비만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로 대표되는 현 세대 비만약의 가장 큰 맹점인 근육 손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현재 비만치료제 시장을 주도하는 위고비(노보 노디스크)와 마운자로(일라이 릴리)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약으로, 두뇌의 식욕중추에 작용해 포만감을 높이고 식욕을 억제함으로써 15~20%의 체중 감량을 유도한다. 하지만 감량된 체중의 최대 40%까지 근육이 함께 손실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존재한다. 특히 고령자나 근육량이 적은 환자의 경우 이러한 근육 손실은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근육 손실은 단순한 체형 문제가 아니다. 근육이 감소하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약물 중단 시 요요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고, 면역력 저하로 인한 감염 위험이 증가한다. 또한 근육의 대사조절 기능 저하로 당뇨병, 고지혈증 등 대사성 질환 위험도 높아진다. 특히 고령자의 경우 근육 손실은 낙상 위험을 높이고 사망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들은 체중은 줄이면서 근육 손실은 최소화하는 차세대 비만치료제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시장 선두주자인 일라이 릴리는 2023년 근감소증 치료제 ‘비마그루맙’을 개발 중이던 버사니스 바이오를 19억3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에 인수했다. 목표는 마운자로의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와 비마그루맙을 병용 투여해 근육량을 보존하면서 체중 감량을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 이 복합 요법은 임상 2상 단계에 있으며, 올해 안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미국의 리제네론 역시 체중 감량 효과를 유지하면서 체지방량, 허리둘레, 체성분, 허벅지 근육량을 보존하는 신약을 개발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임상 2상은 2026년에 완료될 전망이다.
국내 기업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HM17321’은 GLP-1을 비롯한 인크레틴 수용체가 아닌 ‘CRF2(Corticotropin-Releasing Factor 2) 수용체’를 타깃해 지방만 선택적으로 감량하면서 동시에 근육은 증가시키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한미약품은 비만 동물 모델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확인했다. 매달리기 테스트를 통해 근육 기능을 평가한 결과, HM17321의 단독요법에 의해 근 기능이 정상 동물 수준으로 회복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또한 비만을 모사한 지방세포에서 HM17321 투약 시 지방 분해를 촉진하고 지방세포의 표현형을 정상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인간 근육세포에도 직접 작용해 근육의 양적·질적 개선에 기여하는 것을 증명했다.
올해 하반기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으며 새로운 비임상 연구 결과는 오는 6월 미국당뇨학회(ADA)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체중 감량 효과에 근육량 보존 기능까지 갖춘 차세대 비만약이 성공하면 시장이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1차 경쟁에서 2차 경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향후 비만치료제 시장의 승자는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약이 아니라 건강한 체중 감량과 유지를 돕는 약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호윤 기자 khy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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