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공학 전공…20년 베테랑
완공 수개월 전부터 치밀한 계획
“공간ㆍ시간ㆍ사람, 모든 관계 함축
기록을 넘어선 철학적 해석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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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환 건축사진가. / 사진=본인 제공. |
[대한경제=전동훈 기자] “건축물은 빛에 따라 매 순간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건축가의 손길을 거친 공간이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순간, 그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건축 사진의 핵심입니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대한경제>와 만난 윤준환 건축사진가(사진)는 현대건축물 아카이브 시리즈 북 ‘프로젝트A’ 속 사진들을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프로젝트A는 다양한 건축가의 작업을 색채와 형태로 구분해 기획 단계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켜켜이 담아낸 서적이다. 책 속 돋보이는 것은 단연 건축물의 정체성을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낸 윤 작가의 작업들이다.
건축사진스튜디오 ‘어반레코드’를 이끄는 윤준환 작가는 20여 년간 건축물을 카메라에 담아온 자타공인 국내 건축사진 분야의 베테랑이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며 한국건축사진가회 워크숍을 통해 전문 사진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현재 전국을 누비며 갖가지 건축물에 숨은 매력을 발굴하고 있다.
건축과 사진이라는 두 예술 세계의 교차점에 선 윤 작가에게 건축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공간의 철학적 해석이다. 그는“건축가의 의도와 공간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야 좋은 사진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윤 작가의 작업은 철저한 사전 준비로 시작된다. 건물 완공 2~3달 전부터 건축가와의 충분한 소통을 토대로 건물의 설계도, 배치도, 현장 사진 등 기본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뒤 방위와 계절, 날씨까지 고려해 최적의 촬영 계획을 세운다. 건물마다 ‘제철’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흰색 건물이라도 동쪽을 향하는지, 서쪽을 향하는지에 따라 촬영 시간이 달라진다”며 “겨울철 서북향 건물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봄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필로티 구조물은 여름엔 햇빛이 너무 위에서 내리쬐어 가을이나 겨울에 촬영하는 등 여러 해법을 고안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브라케팅(bracketing) 촬영’을 활용해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과 가장 유사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윤 작가는“카메라 센서는 제한적인 밝기만 담을 수 있지만, 우리 눈은 그 이상을 감각할 수 있다”며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해 마치 건물을 직접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계조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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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구마모토현의 한 주택에서 윤준환 건축사진가가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본인 제공. |
가장 도전적이었던 프로젝트를 묻는 질문에 그는 ‘제주 한화 아쿠아리움’ 촬영을 꼽았다. 윤 작가는 “관람객과 해양 생물이 교감하는 듯한 장면을 담기 위해 길게는 3∼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며 “피사체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존중하는 인내의 미학과 그 순간이 선사하는 예측불가능한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가치를 깨닫게 된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재개발을 앞둔 부산 도심의 모습을 2년에 걸쳐 기록한 ‘도시 기록화 작업’도 오늘날 윤 작가를 만든 프로젝트 중 하나다.
윤 작가는 특히 지역 건축가들과의 협업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풍부한 자원이 투입된 유명 건축가의 작품은 기술적으로 누구나 준수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만, 제한된 환경 속에서 공간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역 건축가들의 작품은 사진가의 시선과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며 그들의 건축적 의도를 시각적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직업적 소명을 발견한다고 밝혔다.
건축 사진계에서 점차 중요해지는 저작권 문제도 그의 큰 관심사다.
윤 작가는 “건축상 수상 기사처럼 건축 관련 소식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저작권자 표기 없이 사진이 무단 사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건축가의 설계 저작권 만큼이나 사진가의 작업물에 대한 저작권을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작가는 계약 단계에서부터 저작권과 사용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건축가들에게도 저작권 관련 조항을 설계 계약에 포함할 것을 권고한다.
윤 작가는 향후 사진을 넘어 영상 작업으로의 확장도 계획하고 있다. 정지된 사진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건축물의 다양한 측면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영상은 공간의 흐름과 빛의 변화를 더 역동적으로 담아낼 수 있어 건축 사진의 자연스러운 확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축 사진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는“단순히 사진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건축에 대한 깊은 이해가 먼저”라며 “끊임없는 관찰과 인내, 그리고 건축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있어야 건축사진가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건축 사진은 단순히 아름다운 이미지를 넘어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람의 관계를 담아내는 종합예술”이라며 “앞으로도 건축물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사진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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