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각각 3·4공구 시공사에
농로다리 '사용권' 5억~7억 압박
사실은 철도공단이 건설한 도로
1~4기 마을 대책위 바뀔 때마다
현금 지원·주민 고용 등 막무가내
시공사 편법회계 감행해야 해결
요구수용 땐 다른 공구 피해 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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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지난 17일 찾은 세종시 소정면 대곡리의 ‘평택∼오송 2복선화 3ㆍ4공구 건설공사’ 현장. 마을 주민들이 공구별로 약 5억∼7억원 상당의 ‘마을발전기금’을 요구하며 트랙터로 진입로를 막고 있다. 그 옆으로는 ‘마을 주민의 농로다리를 사용하는 A사는 우리 동네에서 철수하라’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사실 이 마을 주민들이 사용권을 주장하는 ‘농로다리’는 국가철도공단 재산이다.
공단은 지난 2002년 이 마을에 교량형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하며 교량 아래 철도유지보수용 도로를 건설했는데, 그동안 주민들은 이를 무상으로 이용해왔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공단이 교량 지하에 새로운 고속철도를 건설하려 하자, 주민들은 이 도로를 볼모로 공구별로 수억원 상당의 ‘공사진행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이지만 ‘관행’과 ‘지역 노인들’이란 단어 앞에서 공단과 세종경찰청, 건설사는 속수무책이다.
4공구 시공을 맡은 A사 현장소장은 “건설공사 특성상 마을 주민을 어떻게 법대로만 상대할 수 있겠느냐”면서 “33년 경력 동안 대곡리같이 유별난 곳은 처음 본다. 건설업계에서도 전대미문 사례”라고 토로했다. 인근 3공구의 B사 현장소장도 “관행적으로 500만∼1000만원 정도는 지급한 적이 있지만, 수억원을 조직적으로 요구하는 곳은 대곡리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대곡리 주민들이 요구하는 ‘공사진행료’는 2023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사가 착공 전 주민 대상 현장설명회를 개최할 당시 대곡리에는 이미 ‘피해대책위원회’가 있었다. 마을 이장을 위원장으로 1기 대책위는 기존 철도유지보수도로 양쪽에 폭 5m의 마을진입도로 개설을 요구했다. 3ㆍ4공구 현장이 맞물린 곳이다 보니 B사는 길이 1.35㎞(약 3억원), A사는 길이 590m(약 2억원 소요)의 도로 건설을 각각 약속했다. 심지어 대책위 요구에 맞춰 계획에도 없던 마을 진입로 5곳을 추가로 포장했다. 당시 대책위는 도로 공사가 완료되면 앞으로 공사 진행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도 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대책위 집행부가 전면 교체됐다. 갑자기 들어선 2기 대책위는 앞선 합의서를 무시하고 1억원 상당의 세대별 도시가스 설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를 건설사가 거부하자, 집회 시위를 이끈 3기 대책위가 들어선다.
3기 대책위는 3ㆍ4공구 시공사에 도시가스 설치에 더해 ‘마을발전기금’으로 1억2000만원(연 3000만원씩 4회), ‘마을안전지킴이’ 인건비로 1억2000만∼2억4000만원(1인당 월 250만원씩 4년간)을 주면 공사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당시 4공구보다 착공이 시급했던 3공구는 대책위의 반대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자, 작년 9월 추석 명절과 올해 2월 설 명절을 앞두고 1000만원씩 총 2000만원을 3기 대책위에 현금으로 지급했다. B사 현장소장은 “그때 이미 회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비를 털어 대책위에 직접 전달하며 ‘이게 마지막’이라고 당부했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3공구가 대책위 요구를 수용했다며, 4공구의 공사 진행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에 4공구는 ‘현금 일정금액과 공사 진입로에 신호수로 주민 고용’이란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자 지난달 26일부터 마을 대책위는 고령의 주민들을 동원해 공사 진입로를 트랙터로 막고 본격적인 물리력 행사에 나섰다. 장비 통행이 막혀 8일간 공정이 사실상 중단되자 4공구의 토공ㆍ터널공사를 맡은 C사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터널공사 특성상 장비 고정비 손실만 하루 2000만원에 달했다. 연관된 조경석 업체도 하루 300만원의 직접적 손해를 입었다. A사의 하루 지체상금도 3850만원에 이른다.
이처럼 갈등이 깊어지자 지난 14일 4기 대책위가 출범했고 17일 오후 2시 소정면사무소에서 A사와 4기 대책위가 1차 회의를 가졌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가 끝난 후 양쪽은 씁쓸한 얼굴로 회의장을 나섰다. 대책위 측은 “오늘 회의에서 돈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4기의 명분은 세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발전기금’으로 6000만원 이상은 책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마을안전지킴이’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이미 피해가 발생한 단계에서 초기 제시안대로 지급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마을발전기금’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대책위 요구대로 현금을 지급하려면 편법 회계를 감행해야 한다”며 “더 큰 문제는 당사가 대곡리의 요구를 수용하면 공구 내 다른 4개 마을도 똑같은 요구를 해올 것이 자명해 결국 1∼5공구 전체로 퍼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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