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탄핵소추안 통과 111일만
헌정 사상 두 번째…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8년여만
"대통령, 군인들이 일반 시민과 대치하도록 만들어"
"국민 신임 배반…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국민의힘 "헌재 판단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
尹 "이렇게 떠나지만 나라 잘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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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기일인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사진:연합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4일 대한민국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기록이 다시 한번 새겨졌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선고 8년여 만이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정문 게양대에 걸렸던 봉황기는 깃대에서 내려왔고, 외교부는 재외공관에 게시된 윤 전 대통령 사진을 철거했다. 국방부도 육·해·공군과 해병대 등 전군에 있는 윤 전 대통령의 사진을 모두 내리도록 지시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며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한 이후 111일 만이다.
헌재는 탄핵심판 결정문의 결론 첫 줄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호 제1항을 적시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의미를 곱씹었다.
헌재는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며 과거 헌재 결정문을 인용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자정 장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그에 관한 제도적 신뢰가 존재하는 한 갈등과 긴장을 극복하고 최선의 대응책을 발견하는 데 뛰어난 적응력을 갖춘 정치 체제”라며, “현재의 정치 상황이 심각한 국익 훼손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더라도,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예정한 민주적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에 맞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 5월 17일 이후 44년 만에 선포한 비상계엄에 대해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행위라고 봤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은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하여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다”라며,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파면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헌재 판결 이후 여야는 잇따라 승복 메시지를 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헌재 결정이 내려진 지 6분 만에 “생각과 입장이 다를 수 있겠지만 헌재 판단은 헌정질서 속에서 내린 종국적 결정이다. 이 결정을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위대한 국민이 위대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되찾아줬다”라며, “더 이상 헌정 파괴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가 국민과 국가의 희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사실상 승복의 메시지를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 선고 이후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찾은 국민의힘 지도부에 “성원해 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이렇게 떠나지만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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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10일 출범 이후 1060일 만에 막을 내렸다./ 사진:연합 |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조기 대선 사유도 확정됐다. 헌법은 대통령의 궐위 후 60일 이내에 후임 대통령을 뽑기 위한 대선을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기 대선은 늦어도 6월 3일에는 치러져야 한다.
한편, 파면 선고가 내려진 헌법재판소 일대에는 우려와 달리 극단적 폭력 행위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한 남성이 안국역 인근에 세워진 경찰버스 유리창을 곤봉으로 깨는 사건이 있었지만, 곧바로 기동대원에 제압됐다. 집회로 인한 별도 부상자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 파면 당시 지지자들이 경찰버스를 탈취하고,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것과는 대조된다.
경찰은 이날 오전 0시 최고 단계 비상 체제인 갑호비상을 발령하고 전국에 기동대 338개 부대 2만여 명을 배치했다. 서울 지역에는 210개 부대, 약 1만4000명을 투입해 만일의 사고를 방지했다. 오후 6시부로는 갑호비상을 해제하고, 을호비상으로 완화했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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