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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 월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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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4-08 14:25:57   폰트크기 변경      

이완규ㆍ함상훈 후보자 전격 지명
법조계 “인사권 행사 명백한 위헌”
일각선 “尹 전 대통령 입김” 주장
마은혁 재판관ㆍ마용주 대법관 임명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월권’ 논란에 휩싸였다. 헌법학계의 통설과 선례를 뒤집고 대통령 지명 몫인 문형배ㆍ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넘은 인사권 행사로 명백한 위헌”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헌재 결원 사태 반복 막아야”= 한 대행은 이날 문형배ㆍ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으로 검사 출신인 이완규(64ㆍ사법연수원 23기) 법제처장과 함상훈(58ㆍ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ㆍ임명한 두 재판관은 오는 18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헌법은 헌재를 구성하는 9명의 재판관 중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지명ㆍ임명하고, 3명은 국회에서 선출,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한 대행은 “헌법재판소의 결원 사태가 반복돼 헌재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선 관리, 필수 추경 준비, 통상 현안 대응 등에 심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며, 국론 분열도 다시 격화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일 뿐만 아니라, 조지호 경찰청장 탄핵심판도 아직 진행 중인 점 등을 감안했다는 게 한 대행의 설명이다.

◇학계 통설ㆍ선례 뒤집은 인사=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법조계에서는 문형배ㆍ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은 당연히 차기 대통령이 지명ㆍ임명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국회가 선출하거나 대법원장이 지명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은 사실상 임명장만 주는 ‘형식적 임명권’인 반면,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권은 ‘실질적 임명권’이라는 이유였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 대해서는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그야말로 ‘현상 유지’ 수준에 그친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대통령 지명 몫인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퇴임했을 때에도 후임 자리는 다음 대통령이 뽑힐 때까지 그대로 비워뒀다.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인 2017년 3월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법원장 지명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게 전부였다.

◇법조계 “명백한 월권… 한 대행 탄핵해야”= 하지만 한 대행이 학계의 통설이나 선례를 뛰어넘어 인사권을 행사하자 법조계에서는 “명백한 월권”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헌법학계의 주류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번 인사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넘은 인사권 행사로 위헌”이라며 “향후 정권 교체가 유력해 보이는 상황에서 헌재의 색채를 완전히 보수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명예교수도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기가 보장되는 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며 “법리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도의에도 어긋난다. 대통령 탄핵 이후 정국의 안정을 도모해야 할 총리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한 대행을 다시 탄핵소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안 해야 될 일은 하겠다고 우기는 꼴”이라며 “반헌법적이고, 그 자체로 탄핵감”이라고 일갈했다. 이날 한 대행은 그동안 임명을 미뤄왔던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와 국회 선출 몫인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했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도 “헌법이나 법률 규정은 없지만 학계의 통설에 따르면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행사는 명백한 위헌행위로, ‘끼워넣기’ 식의 인사”라며 “당장 대선을 준비ㆍ관리해야 하더라도 한 대행을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의 배경에 윤 전 대통령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파면된 대통령의 입김이 아직까지 한 대행에게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A교수는 “윤 전 대통령이 한 대행을 통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새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는 것”이라며 “파면 결정 이후 ‘헌재를 장악해야 한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당장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행사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없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라 ‘차기 대통령의 인사권 침해’로 볼 수 없어 한 대행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당장 법적인 해결은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한 대행이 어떤 의도로 지명권을 행사했는지, 과연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임지봉 교수는 “헌재에 헌법재판을 청구한 당사자가 ‘재판관 지명권이 없는 한 대행에 의해 공정한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형배ㆍ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지명된 이완규 법제처장(왼쪽)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사진: 연합뉴스


◇10번째 ‘검사 출신 재판관’ 나오나= 한편 이 처장이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2018년 9월 안창호 전 재판관 퇴임 이후 끊어졌던 검사 출신 재판관의 명맥을 잇게 된다.

1988년 헌재 설립 이후 검사 출신 헌법재판관은 김양균(노태우 전 대통령 지명), 정경식(김영삼 전 대통령 지명), 조승형(국회 민주당 몫 선출), 신창언(국회 민주자유당 몫 선출), 송인준ㆍ주선회(김대중 전 대통령 지명), 김희옥(노무현 전 대통령 지명), 박한철(이명박 전 대통령 지명), 안창호(국회 새누리당 몫 선출) 재판관 등 모두 9명 있었다.

인천 송도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처장은 1994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검사와의 대화’에서는 참여정부의 검찰 인사를 비판해 주목받았다.

윤 전 대통령과는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로, 검찰에서 함께 일하는 등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윤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전격 발탁되자 ‘법무부 장관이 공석인데 장관의 제청 없는 대통령의 중앙지검장 임명은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며 검찰을 떠났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법무부로부터 징계를 당하자 징계 취소소송 대리인으로 나서는 등 ‘소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받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법제처장에 임명됐다.

다만 야권에서는 이 처장이 12ㆍ3 비상계엄 사태 직후 이른바 ‘안가 회동’에 참석하는 등 내란 혐의의 공범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함 부장판사는 동대부고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5년 청주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래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 등을 역임한 정통 법관이다. 대법원 조세법연구회ㆍ헌법행정법연구회 회장 등을 지냈고, 2004년 헌재에 파견돼 근무한 경력도 있다.

한 대행은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에 대해 “각각 검찰과 법원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았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줄 적임자들”이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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