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헌법소원ㆍ가처분 신청 제기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지명 몫 헌법재판관 지명을 두고 ‘월권’ 논란이 불거지자 법조계에서 한 대행의 지명권 행사를 막기 위한 법적 대응이 이어져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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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이날 “현상 유지적인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한 대행의 일련의 행위는 위헌 무효”라며 헌법소원과 함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한 대행의 위헌적인 헌법재판관 지명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ㆍ절차에 따라 임명된 재판관에 의해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법무법인 덕수도 이날 자신들의 형사사건과 관련한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인 윤모씨와 홍모씨를 대리해 김 변호사와 비슷한 취지의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을 냈다.
앞서 전날 한 대행은 오는 18일 6년 임기를 마치는 문형배ㆍ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으로 검사 출신인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헌법은 헌재를 구성하는 9명의 재판관 중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지명ㆍ임명하고, 3명은 국회에서 선출,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자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넘은 인사권 행사로 명백한 위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는 ‘현상 유지’ 수준에 그친다는 게 헌법학계의 통설인데, 한 대행이 학계의 통설과 선례를 뒤집고 재판관 지명권을 행사했다는 이유였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대통령의 재판관 임명 권한은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민주적 정당성 있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의 고유 권한”이라며 “대통령 궐위 시 부득이 임시로 직무를 수행하는 임명직 총리나 장관에게 부여된 권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재판관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떠나 한 대행의 지명 자체가 위헌”이라며 “(두 사람이 재판관으로) 임명될 경우 중대한 헌법적 분쟁에 휩싸여 헌재의 재판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고, 국민적 불신으로 재판기관의 위상과 권위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당장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행사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관측이 나왔다.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라 ‘대통령의 인사권 침해’로 볼 수도 없어 한 대행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권 행사를 막을 방안으로 헌법소원 청구와 가처분 신청이 거론됐다. 헌재에 이미 헌법재판을 청구한 당사자가 ‘재판관 지명권이 없는 한 대행에 의해 공정한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하면 된다는 것이다.
헌법소원을 청구하려면 공권력에 의해 청구인 본인의 기본권이 직접 침해돼야 하고, 제3자는 원칙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다.
실제로 김 변호사는 앞서 “12ㆍ3 비상계엄 당시 포고령 제1호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2024헌마1131)을 낸 당사자다. 이 사건은 헌재가 심리 중이다.
김 변호사 등의 가처분 신청은 문형배ㆍ이미선 재판관 퇴임 전에 빠르게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헌재는 지난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과정에서 이 위원장 측이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는 헌법재판소법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나흘 만에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전례가 있다. 당시 헌재는 국회 선출 몫인 재판관 3명의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이와 함께 법조계에서는 김 변호사 등의 가처분 신청이 실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헌재가 한 대행 탄핵심판 사건에서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권한대행자로서 국무총리는 대통령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위에 있다”며 “대통령의 지위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이유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예비적ㆍ보충적으로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게 당시 헌재의 판단이었다.
노 변호사는 “오는 6월 새로 선출된 대통령에 의해 재판관이 지명되고, 국회의 적법한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서 임명되는 것이 우리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이자, 국민의 명령”이라며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한 대행의 재판관 임명 절차를 중단시킬 필요가 있고, 만약 그래도 한 총리가 위헌적인 임명을 강행하려고 한다면 탄핵소추를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처장의 경우 한 대행의 월권 논란에 재판관 결격 사유 의혹까지 겹치며 후보자 자격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결격 사유로 △정당의 당원 또는 당원의 신분을 상실한 날부터 3년이 경과되지 않은 사람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자문이나 고문의 역할을 한 날부터 3년이 경과되지 않은 사람 등을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처장이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캠프에서 ‘네거티브 대응 자문’을 맡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재판관 결격 사유”라며 스스로 재판관 후보자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재판관 결격 사유를 이 처장에게 적용하긴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대선 캠프 활동 관련 규정의 경우 ‘3년 경과’ 여부를 따질 때 기산점을 ‘자문단, 고문단, 특보단, 위원회 등 선거 관련 조직의 해단 시점’으로 봐야 하는데, 윤 전 대통령 대선 캠프는 대선 다음날인 2022년 3월10일 공식 해단돼 이미 3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정당 가입 여부와 관련해서도 이 처장은 “국민의힘에 입당한 적도, 정당 활동을 한 적도 없다”고 해명하며 재판관 후보자에서 물러날 뜻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민주당 등은 윤 전 대통령과 오랜 친구로 알려진 이 처장이 12ㆍ3 비상계엄 사태 직후 이른바 ‘안가 회동’에 참석하는 등 내란 혐의의 공범이라는 의심을 이어가고 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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