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개발ㆍ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에서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자는 도시정비법상 현금청산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토지 또는 건축물에 대해 조합에게 이미 신탁등기를 마쳐준 경우, 과연 청산금은 언제부터 지급되어야 하며, 그 지연에 따른 손해금까지 조합이 부담하여야 하는지 여부는 실무상 매우 민감한 쟁점이다. 특히 분양신청을 하지 않는 등 청산사유가 발생한 즉시 현금청산하도록 정한 과거 도시정비법을 개정하여 협의 및 수용절차 또는 매도청구를 거치도록 한 현행 법규 하에서는 청산금 지급시점이 과거보다 더욱 유동적이며, 법적 분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1. 청산금 지급시점: 단순히 신탁등기 시점인가?
우선 판단해야 할 것은 청산금 지급의 ‘기산점’이다. 현금청산의 대상자가 조합에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신탁등기하였다면, 이는 형식적으로 조합이 해당 부동산을 사실상 관리ㆍ처분할 수 있는 지위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청산금 지급의무가 발생하는 ‘법적 기산점’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현행 도시정비법 제73조 제1항은 분양신청을 하지 아니한 자 등에 대해 사업시행자가 “손실보상에 관한 협의를 하여야” 하고, 협의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비로소 수용재결이나 매도청구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탁등기는 재산권 이전의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할 뿐, 손실보상 협의가 이루어졌다는 실질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이상 조합이 일방적으로 ‘청산금 지급의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신탁등기가 경료되었더라도 협의 또는 수용이 법적으로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청산금 확정 및 지급의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개정된 도시정비법의 취지에 보다 부합한다.
2. 지연손해금 발생 여부: 쌍방귀책 없는 ‘지체’는 없다
그렇다면, 신탁등기를 해주었음에도 조합이 청산금을 즉시 지급하지 않았을 경우,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하여야 하는가? 이에 대해선 민법 제390조(채무불이행) 및 제397조(이자 지급)에 따라 손해배상 또는 이자의무가 성립하려면 조합에 ‘귀책사유 있는 지체’가 인정되어야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현행법은 청산금 지급 전 보상 협의라는 절차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 협의 또는 법적 판단 없이 조합이 일방적으로 지급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따라서, 청산금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조합이 지급을 지체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지연손해금 역시 그 확정 이후부터 계산되어야 할 여지가 크다. 만약 수용재결 등의 결정일이 있다면, 해당 결정일을 기준으로 청산금 지급의무가 발생하고, 이후 상당 기간 내 지급하지 않을 경우에만 지연손해금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조합이 사업시행인가 후 장기간 청산을 지체하며 현금청산자에게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 경우에는 공평의 원칙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조합의 일정한 책임이 인정될 수는 있을 것이다.
3. 결론: 신탁등기는 시작일 뿐, ‘청산’의 끝은 아니다
신탁등기를 마쳐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조합의 청산금 지급시점이 도래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법령상 협의 및 재결 등의 절차가 완료된 이후부터 지급의무 및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현행 도시정비법의 입법취지에 부합한다.
따라서 조합은 신탁등기가 마쳐졌다고 하여 즉시 지급의무를 부담하지는 않되,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적정한 시점에 청산금을 지급할 준비를 갖추어야 하며, 일정 지연이 발생할 경우 지연손해금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오동준 변호사(법무법인 현)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