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가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 정국을 맞아 대정부 투쟁 강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 해체, 내년도 의대 정원 조기 확정, 정부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하며 오는 20일 전국의사총궐기 대회를 예고하는 등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의협이 전면에 나서 힘 빠진 대행체제를 압박해 정책 결정을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체제는 정통성과 권한이 제한된 과도 정부다. 대행체제는 6ㆍ3 조기선거의 공정 관리를 비롯해 최소한의 국정 유지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가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의대 정원 문제나 의료개혁 방향은 새로 출범할 정부가 국정 철학과 중장기 정책 방향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공공의료 강화에 강한 의지를 보여온 인물이다. 공공의료 확대는 의사 수 증원과 맞물려 있어 의협 정책 기조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의협 움직임이 새 정부 출범 전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확정하려는 의도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국가 정책은 특정 직역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돼선 곤란하다. 의대 정원 문제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보건의료 인력 배치, 교육 역량, 지역의료체계 등과 복합적으로 맞물린 사안이다. 사회적 합의와 중장기적 비전 없이 대행체제에서 성급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사회적 논의의 틀을 재정비하고, 새 정부가 대국민 의료서비스를 고려해 정책을 재설계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의협은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전문가 집단이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의료체계의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정부와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요구사항 관철을 위한 전술이 아니라 의료개혁을 위한 대타협에 책임 있는 자세로 적극 나서야 한다.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