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여권 영문(로마자) 이름을 바꿔달라는 신청을 ‘로마자표기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외교부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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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한경제 DB |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 부장판사)는 A(5)양의 부모가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불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양의 부모는 2023년 A양의 이름에 들어가는 ‘태’를 영문 ‘TA’로 기재해 여권을 신청했다. 하지만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로마자표기법에 어긋난다며 ‘TA’ 대신 ‘TAE’로 바꿔 여권을 발급했다.
여권법 시행규칙은 ‘여권 명의인의 로마자 성명은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한글 성명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표기 방법에 따라 음절 단위로 음역에 맞게 표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한글 성이나 이름이 로마자로 표기되는 외국식 이름이나 외국어와 음역이 일치할 경우에는 해당 외국식 이름이나 외국어를 쓸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A양의 부모는 당초 기재했던 대로 ‘TA’로 바꿔달라고 신청했지만, 외교부가 ‘여권법 시행령에 따른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법원은 “한글 이름이 로마자로 표기되는 외국식 이름과 음역이 일치할 경우 그 이름을 여권 로마자 성명으로 표기할 수 있다”며 A양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로마자표기법 규정 내용과는 다소 다르더라도 우리나라 여권에 대한 대외신뢰도에 지장을 주거나 범죄 등에 이용할 것이 명백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영문 이름 변경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특히 재판부는 “자신의 성명을 여권에 로마자로 어떻게 표기해 기재할지 결정하는 것도 개인의 자율에 근거한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영역”이라며 “기본권 보장 의무를 지는 행정청 등은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공익을 중대하게 훼손하지 않는 한 가급적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체부 고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어디까지나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라며 “상식적으로도 ‘cap(캡)’, ‘nap(냅)’, ‘fan(팬)’ 등 모음 ‘A’를 ‘애’로 발음하는 단어를 무수히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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