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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경제 DB |
[대한경제=이종무 기자] 주택 건설 과정에서 학교 측이 개발사업자에 과도한 기부채납을 요구하면서 고분양가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음에도 이미 체결된 기부채납은 조정이 어려워 많은 학급이 텅 빈 교실로 남는 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학령인구 초과 기부채납 빈번
19일 대한주택건설협회(주건협)에 따르면 주택건설사업자는 주택 건설 과정에서 학교용지부담금을 납부하는 대신 교육청과 학교시설 기부채납 약정을 체결할 수 있다. 사업자가 사업계획승인 신청 전에 교육청과 학생 배정을 사전에 협의하고, 승인 신청 시 교육청 협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특히 개발사업으로 발생하는 학령인구를 수용할 학급이 인근 학교에 부족한 경우 학급을 증축하거나 신설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급 증ㆍ개축 외에 대규모 부대시설 설치, 추가 토지 매입 등으로 법정 학교용지부담금 산정금액을 훨씬 초과하는 기부채납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경북에 주택 건설 규모가 약 1000가구인 한 사업장에서는 부담해야 할 학교용지부담금이 63억원 수준인데도 실제로는 115억원에 달하는 기부채납 약정을 체결하고 나서야 교육청 협의를 받았다. 대전에선 부담금(33억원)의 무려 13배가 넘는 450억원 규모 기부채납 협약을 체결한 사례도 있다.
경기 이천 안흥지구에선 3개 건설사가 약 2730가구의 공동주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증축 목적으로 260억원의 기부채납 협약을 맺고 이행보증서까지 교육청에 제출했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청은 학생 수용 관련 모든 사항을 주택건설사업자가 학교 측과 직접 협의하도록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협의 과정에서 학교 측이 학부모회, 총동문회,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내세워 사업자에 무리한 증축 등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해 어려움이 가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건협 한 관계자는 “사업자는 사업 추진을 위해 이러한 부당한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면서 “사업 지연 시 막대한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교육청의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적정 학령인구 산정 기준 시급
문제는 최근 급속한 저출생ㆍ고령화로 학령인구도 빠르게 축소하고 있지만 학생 수요를 고려하지 않는 기계적인 절차 탓에 과잉 학급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최초 기부채납 협약 당시 학생 수요가 착공 이후 줄어들어 학급 수 조정이 필요한데도, 이미 수분양자의 분양대금으로 학급이 과도하게 설치돼 빈 교실로 남아있는 학교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경기 이천 백사지구(2개블록ㆍ1861가구)의 경우 당초 교육청은 초등학생 400명, 중학생 168명을 예상해 초등학교 18학급, 중학교 8학급 증축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공사를 마친 1블록 입주 시기가 다가오자 실제 유발된 학생 수는 초등학생 30명, 중학생 10명에 불과했다.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2블록 입주 시기를 감안하더라도 당초 교육청 예상치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그러나 학급 수를 조정할 수 있는 관련 규정 등 근거가 부재하다. 교육청은 입주 시점에 실제 학생 수를 기반으로 학급 수를 재협의하는 데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존 체결한 협약 내용의 변경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선 교육청의 학령인구 산정방식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2024년 지방 교육재정 분석 결과 종합 보고서’에서 2023년 기준 전국에서 개교한 지 3~5년 된 학교(2019~2021년 개교) 217개교 가운데 19개교가 학생 과소 수용 학교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에 보고서는 교육청이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여전히 유사 지역의 통계에 근거한 학생유발률을 단순 활용해 오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건협 관계자는 “이렇게 약정 체결 시점의 교육청 추산과 입주 시점의 실제 학급 수요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지만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로 학급 수 등 기부채납 규모가 확정되면 사실상 조정이 어렵다”며 “지역 실정과 맞지 않는 텅 빈 교실의 증축 등 기계적인 행정이 이뤄지며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적정한 학교시설 기부채납 수준을 정하는 기준도 없는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2023년 9월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으로 학교시설 기부채납 기준 마련을 내놨지만 아직까지 제대로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주건협의 설명이다.
또 내달 21일부터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요율이 0.8%에서 0.4%로 인하하고 대상도 100가구에서 300가구로 완화하지만, 부담금 납부 대신 교육청과 학교시설 기부채납 약정을 체결하는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과도한 비용 부담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건협은 이런 관행 개선을 위해 교육부에 대책 마련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 학급 수 등 학교시설 기부채납 조정 기능을 부여해, 입주 시점의 실제 학생 수를 반영한 기부채납 수준을 조정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골자다.
주건협 관계자는 “주택 건설사업에 따른 학교시설 확충이 필요할 경우 협약 체결 시점에 교육청이 확충이 필요한 적정 규모를 산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사업자가 부담하는 기부채납이 학교용지부담금을 초과할 경우에는 교육청 예산 집행으로 사업자 부담을 완화하는 등 기부채납에 따른 분쟁 소지가 없도록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입주 시점의 학령인구 변화를 반영해 학급 수 등 기부채납 수준을 조정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청도 필요성을 인정하는 학급 수 조정을 위해 실질적인 협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종무 기자 j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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