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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대선 이모저모] 일상에 다시 깃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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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6-03 16:43:06   폰트크기 변경      
혼돈의 반년, 참정권은 멈추지 않았다

일터에서, 거리에서, 시민들이 만든 선거의 얼굴
투표소는 어디에나 있다…이색 선거현장 ‘눈길’
쿠팡도 멈췄다…유권자 권리 지킨 ‘택배 없는 날’
중국인이 투표 중?…사적 감시 논란도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약 6개월 뒤인 2025년 6월3일. ‘장미대선’이라는 이름으로 투표소가 다시 열렸다. 급박하게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혼돈 속 참정권’이라는 말로 요약되지만, 투표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웠다. 민주주의는 피자가게와 자동차 전시장, 택배 없는 하루에 깃들었고, 고3 학생들은 모의고사 전날 생애 첫 투표를 했다.

그러나 ‘중국인 색출’이라는 자의적 감시도, 멈추지 않는 공사장도 있었다. 전국 1만4295곳의 투표소에 펼쳐진 풍경은 갈등과 화합이 교차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고스란히 비췄다.

피자와 고기 굽는 투표소


3일 서울 광진구 한아름쇼핑센터 1층에 위치한 피자집 민벅이 화양동제5투표소로 이름을 바꿨다. 사진은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 한 시민의 모습. / 사진 : 안윤수 기자 


서울 광진구의 한 피자가게 ‘민벅’은 이날 하루 ‘광진구 화양동제5투표소’로 이름을 바꿨다. 테이블은 잠시 물러나고, 화덕 옆에 기표소 네 개가 들어섰다. 가게엔 손님 대신 유권자들이 줄을 섰다.

서울 강동구의 만화카페 ‘승룡이네 루디아’, 경기 광명시의 고깃집 ‘상상초월식당’, 수원 팔달구의 웨딩홀, 서울 중구의 실내 야구 훈련장, 서울 광진구의 자동차 전시장까지…. 일상은 잠시 휴식하고, 민주주의가 그 자리를 채운 광경이 펼쳐졌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서울 중구 청구초등학교 야구부실내훈련장에 마련된 청구동 제1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사진 : 안윤수 기자 


부산 수영구의 레슬링장도 투표소로 활용됐다. 과거 검도장이었던 이곳은 어르신 유권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도 같은 장소로 유지되었다. 레슬링장 주인은 “이번 대선이 보통 대선이 아니다 보니 국민 된 도리로 참여를 안 할 수 없었다”며 흔쾌히 공간을 내어주었다.

이들 민간 투표소에는 수십만원의 임차료가 지급되지만, 일부 가게 주인들은 주민들 위해 무상으로 공간을 내어주는 장면도 연출됐다.

“로켓배송도 오늘은 쉽니다”…쿠팡이 처음 멈춘 날


서울시내에서 로켓배송 중인 쿠팡 배송기사. / 사진 : 연합 


‘쿠팡이 멈췄다’는 건 그 자체로 뉴스였다. 지난 2014년 로켓배송이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쿠팡이 대선일 하루, 주간 로켓배송(오전 7시∼오후 8시)을 중단했다. 이에 택배기사 2만여 명이 이날은 유권자로 살아갔다.

지난 31일 쿠팡은 앱 공지를 통해 “6월 3일 낮 시간에는 로켓배송이 중단된다”며 “필요한 상품은 6월 1일까지 주문해달라”고 사전 안내했다.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자영업자들을 고려해 로켓프레시는 정상 운영됐지만, 이후 주간배송은 완전히 멈췄다.

앞서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 우체국택배 등 주요 택배사들은 선거일을 휴무로 정했다. 그러나 올해 쿠팡이 여기에 동참하면서 ‘택배 없는 첫 대선’이 된 것이다. 전국택배노조는 이를 “택배노동자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 역사적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공공기관 발주 건설현장의 경우 절반 가까이가 ‘정상근무’였다.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에 따르면, 대선 당일 서울권 도기본 공공발주 건설현장 33곳 중 15곳은 선거일에도 업무를 이어갔다. ‘오전 투표 후 작업’이라는 방식을 택했지만, 현장에선 투표 참여가 여전히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이 돕고, 장애를 고려한 투표소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대구 중구 동덕초등학교 1층 드라마실에 마련된 삼덕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투표소 밖 게시판에 붙어있는 초등학생들의 투표율 분석 게시물 앞에서 투표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 사진 : 연합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모바일 신분증’도 많은 유권자들의 발걸음을 도왔다. PASS 앱이나 카카오지갑 등으로 본인 인증을 하면 실물 신분증과 동일하게 투표가 가능했다. 다만 캡처된 화면은 인정되지 않았다.

전체 투표소의 98.8%는 1층 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 설치됐고, 휠체어 출입 가능한 대형기표대와 점자 투표보조용구, 손떨림을 고려한 레일버튼형 기표용구까지 마련됐다.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 유권자에게는 법원의 인용 결정에 따라 투표보조가 허용되기도 했다.

“중국인이 투표 중?”…사적 감시 논란


21대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이 투표함 보관장소 CCTV 통합관제센터의 화면을 살피고 있다. / 사진 : 연합 


지난 30일 사전투표소 앞에선 한 가지 불편한 장면도 펼쳐졌다. 서울 광진구 자양2동, 영등포 대림동 등 일부 투표소에선 ‘중국인 색출’을 빌미로 유권자에게 말을 걸고 신분을 추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부는 한국어 능력을 시험하거나 촬영까지 시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중국인이 투표 중”이라는 주장과 영상이 돌았지만, 대부분은 사실과 달랐다. 귀화한 한국 국적자가 투표한 장면을 중국 국적자의 불법 투표처럼 조작한 사례도 있었다.

이에 선관위는 “사적 감시로 인해 소란을 일으키거나 무단 침입, 물리력 행사 등이 발생할 경우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선거부터는 사전투표지 보관소 CCTV 24시간 공개, 투표지 수검표, 1시간 단위 투표자 수 실시간 공개 등 부정선거 방지 대책이 총동원됐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사전투표 후 본투표를 다시 시도한 이중투표 시도가 3건 적발되기도 했다,

20만 ‘생애 첫 유권자’…“근데 6월 4일, 모의고사라뇨”


지난달 29일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삼일공업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투표확인증들 들고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 : 연합


이번 선거엔 약 20만 명의 고3 유권자가 첫 투표권을 행사했다. 각 교육청은 영상을 제작하고 투표를 독려했다. 학생들은 사전투표소를 찾아 인증사진을 남겼다.

하지만 선거 다음 날인 6월 4일이 전국 단위 모의고사일이었던 탓에 “왜 이 시기에 선거냐”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일부 학교는 여전히 오전 8시 30분까지 등교를 요구해 사전투표조차 어려웠다는 비판도 있었다.

학벌없는사회 시민모임은 “교육당국은 학생 유권자들이 실제로 투표할 수 있도록 시간과 여건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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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부
박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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