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등 최고 사법기관 구성부터
검찰 등 수사기관 대대적 변화 불가피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법원ㆍ검찰개혁’ 카드가 법조계에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최고 사법기관 구성부터 검찰 등 수사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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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한경제 DB |
4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에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 방안의 일환으로 ‘검찰개혁 완성’과 ‘사법개혁 완수’를 예고했다.
우선 사법개혁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대법관 증원을 필두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 온라인재판 제도 도입, 국민참여재판 확대,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등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헌법상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동시에 법원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대법관 증원안이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현행 법원조직법상 대법관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으로 규정돼 있다.
공약집에 구체적인 증원 규모는 나와있지 않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대법관을 30명(김용민 의원안)에서 100명(장경태 의원안)까지 늘리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에 계류 중인데, 민주당은 이날 오후 법사위 1소위와 전체회의를 열어 대법관 증원안을 강행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통령 당선 첫날부터 사법개혁에 드라이브를 거는 양상이다.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이 매년 4만여건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상고심 제도 개선은 오랫동안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은 전체 대법관 13명 가운데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 12명이 4명씩 3개의 ‘소부(小部)’를 구성해 1명당 연평균 3000~4000건의 상고심 사건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불거졌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도 대법원이 상고심 제도 개선 방안으로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과도한 입법 로비를 벌인 게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법관 수가 늘면 당장 상고심 사건에 보다 많은 역량을 투입할 수 있게 돼 대법관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속한 사건 처리를 통해 상고심 적체 현상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구상이다. 앞서 대한변호사협회도 대법관 증원에 찬성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대법관이 대거 늘어날 경우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돼 대법원의 법령해석 통일 기능과 정책법원 기능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상고심 사건을 다루는 전원합의체가 심도있는 토론보다는 국회처럼 표결로 다수 의견을 정하는 방식으로 흐를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전원합의체를 통한 통일적 법 해석이라는 이른바 ‘원 벤치(one-bench)’ 시스템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대법관 증원에는 반대해왔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A부장판사는 “어떤 식으로든 상고심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원 벤치’는 말 그대로 하나의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의미가 있다”며 “정책법원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법원의 사건 처리율만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대법원이 지난달 1일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어 ‘사법부 흔들기’나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법안도 발의한 상태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지도 관심사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완전 분리’를 골자로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적 통제 강화, 검사 징계 파면 제도 도입 등이 이 대통령 공약의 핵심이다.
수사ㆍ기소 분리는 검찰을 기소 중심의 ‘기소청’으로 재편하는 대신 수사 기능은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해 이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검찰에는 기소와 공소유지 기능만 남기는 셈이다. 검찰 견제를 위해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대통령의 공약이 현실화되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만큼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검장을 지낸 B변호사는 “수사와 기소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문재인 정부 시절 졸속 추진된 검ㆍ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과 경찰의 ‘사건 핑퐁’에 따른 수사 지연과 부실 수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부른 수사ㆍ기소 분리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권 교체에 따라 ‘보복성 물갈이 인사’ 가능성도 있는 만큼 검찰 내부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C차장검사는 “대선 이후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을 얼마나 쳐내느냐에 따라 인사 폭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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