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고른 침대, 요리연구가가 차린 밥상
감각을 깨우는 LP 턴테이블과 천연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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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 휴 트리하우스 / 사진 : 노원구 제공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서울의 북쪽 끝, 도시의 마지막 능선을 따라 나무가 말을 걸어오는 곳이 있다. 수락산 동막골. 이 깊은 골짜기에 조용히 둥지를 튼 ‘수락 휴(休)’는 서울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자연휴양림이다. “모든 것은 숲으로부터 온다.” 이곳을 관통하는 문장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사계절의 빛과 소리, 향기와 숨결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 철학이다.
총사업비 224억원이 투입된 수락 휴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품에 안긴 듯한 구조로 조성됐다. 트리하우스를 포함한 18개 동, 25개 객실은 최대 105명이 머무를 수 있는 규모지만, 사람보다 나무가 먼저 머무는 공간이다. 객실 외벽은 자연목으로 마감돼 숲의 일부처럼 숨 쉬고, 내부에는 TV 대신 LP 턴테이블과 마샬 스피커가 놓여 있다. 음악은 바늘을 타고 천천히 흐르고, 바람은 나뭇잎을 따라 객실 안까지 스며든다.
특히 수락 휴의 트리하우스는 이 휴양림의 진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법한 그 상상이 현실로 펼쳐진다. 사다리를 딛고 계단을 오르면 숲의 지붕 위에 올라서고, 수락산 자락이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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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하우스 야경 / 사진 : 노원구 제공 |
삼림욕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면역세포를 증대시킨다는 과학적 연구처럼, 이 트리하우스는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도시인의 피로를 정화하는 공간이다. 아이들에게는 모험심을, 어른에게는 치유와 고요를 선사한다.
이곳엔 조리도구도, 바비큐도 없다. 대신 숲과 계절에 어울리는 식탁이 기다린다. 수락 휴의 레스토랑 ‘씨즌 서울 by 홍신애’는 요리연구가 홍신애가 메뉴를 고안하고 직접 운영하는 공간이다.
이 식당이 수락산 자락으로 오기까지엔 작은 일화가 있다. 강남에서 이미 유명한 식당을 운영 중이던 홍 연구가를 오승록 노원구청장이 두 차례나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수락 휴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숲의 철학에 어울리는 식탁이 필요합니다.” 오 구청장의 설득에 마음을 연 홍 연구가는 수락 휴를 위한 특별한 밥상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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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연구가 홍신애 / 사진 : 박호수 기자 |
그 식탁에는 충남 서산에서 온 멸치, 강원도에서 자란 쌈 채소, 전남의 토마토 등 전국 각지의 생산자와 계약한 식재료가 오르며, 건강한 육질의 난축맛돈, 당일 도정한 오분도미로 지은 밥, 직접 담근 수제 쌈장 등이 곁들여진다. “몸이 고맙다고 말하는 식사”라는 평가처럼, 이곳의 식사는 기교보다 진심이 우선인 식탁이다.
식사는 오전 7시부터 아침상으로 시작해 점심은 일반 방문객에게도 개방된다. 저녁은 숙박객 전용으로, 밤 8시부터는 라면과 떡볶이 같은 밤참도 제공된다. 숙박객을 위한 카페도 마련돼 있으며, 쑥라떼와 아몬드솔티크림라떼, 초당옥수수빵 등 메뉴도 자연주의 콘셉트에 맞게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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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의 집 / 사진 : 박호수 기자 |
휴양림 밖으로 나서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무장애 숲길, 유아숲체험장, 순환산책로는 누구든 쉽게 걷기 좋게 설계됐고, 곳곳의 포토존과 자연 조형물은 숲의 이야기를 따라 이어진다. ‘걱정 없샘’, ‘요정의 숲’ 같은 이름이 붙은 조형물 앞에서는 아이들도 어른도 잠시 멈춰 선다. 바람이 부는 해먹존과 불멍존, 휴마당은 쉼의 마지막 장면을 풍성하게 채운다.
수락 휴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숲과 이어진 여러 공간이 여행의 밀도를 더한다. ‘도선사’와 ‘송암사’ 등 인근 전통사찰 4곳은 사찰 체험과 명상을 위한 조용한 쉼터로 열려 있고, 계곡 피크닉장과 수락산 산림치유센터, 아웃도어 힐링 프로그램도 준비될 예정이다.
수락 휴는 7월 17일 정식 개장을 앞두고 있다. 사전 시범운영 기간 중 진행된 숙박 사연 공모에는 단 12일 만에 1만 247건이 몰렸고, LP 기부 이벤트에도 주민들의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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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모습 / 사진 : 노원구 제공 |
오 구청장은 수락 휴를 누구보다 아꼈다. 2018년 초선 당시부터 구상을 시작해, 매주 현장을 찾고 전국의 자연휴양림은 물론 호텔 14곳을 직접 발로 뛰며 벤치마킹했다. 그중 가장 편안하다고 느낀 침대 브랜드를 객실에 들여놓았을 정도로 세심하게 챙겼다. “자연휴양림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데 서울 안에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우리는 구민에게 숲의 시간을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수락 휴는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오랜 설계와 설득, 손길로 탄생한 도시 속 숲의 선물이다.
수락 휴의 숙박 예약은 산림청 ‘숲나들e’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정식 예약은 6월 16일부터, 노원구민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10% 할인된 요금으로 우선 예약할 수 있다. 사용료는 주말 기준 트리하우스형 4인실 25만원(노원구민 22만5000원), 본동 2인실은 7만원(구민 6만3000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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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 휴 본동 전경 / 사진 : 노원구 제공 |
오 구청장은 “최초이자 최고의 자연휴양림이 수락산에 개장하기까지 오래 기다려준 구민들에게 감사하다”며 “이제 문을 여는 수락 휴에 구민들의 특별한 이야기와 추억들이 더욱 풍성하게 깃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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