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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하자소송, ‘고무줄 감정’ 해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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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6-09 06:00:37   폰트크기 변경      

감정 기준 모호한데 재량권은 커
부실ㆍ과잉 감정 속출… 소송 장기화
소비자ㆍ주택건설업계에 피해 전가
19일 ‘하자소송 해법 세미나’ 열려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아파트 등 공동주택 하자소송을 둘러싼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법원의 건설감정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법원 감정인의 재량이 너무 크다 보니 이른바 ‘고무줄 감정’이 속출하면서 소송 장기화는 물론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시작된 아파트 하자소송은 해마다 그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전체 하자소송의 예상 판결금은 조 단위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1차 하자소송 판결 이후 방화문이나 게이트웨이 등 판결금액이 큰 하자항목을 중심으로 2ㆍ3차 기획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 건설사들의 하자소송 부담도 점점 늘어난다는 뜻이다.

문제는 하자소송 과정에서 법원 감정인의 재량이 너무 크다 보니 ‘과잉ㆍ부실 감정’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자소송 등 건설 분쟁에서는 감정 결과가 사실상 소송의 승패를 좌우한다. 하자의 종류와 원인 등이 다양하고 복잡해 이를 해결하려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만큼, 건설 분야의 비(非)전문가인 판사들로서는 감정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일한 감정항목이라도 감정인마다 기준이 다르다 보니 감정금액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 전문지식과 시공 경험, 감정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감정 의견을 내기보다는 기존 판례나 감정 사례를 그대로 옮기는 부실 감정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같은 건물, 같은 부분에 대한 감정 결과가 감정인에 따라 세대당 최소 몇십만원에서 최대 몇천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일도 있다.


지난해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하자보수 비용에 대한 최초 감정 결과(세대당 4200여만원)와 재감정 결과(세대당 390여만원)에 10배가량 차이가 나자 ‘재감정 결과를 기준으로 하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반면 판사들은 건설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감정인들이 내놓은 감정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A부장판사는 “판사들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보니 감정인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7월1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공동주택 하자소송의 문제점’ 포럼 모습. 이승윤 기자 leesy@


그러나 법원이 감정인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나 실효성은 미흡한 실정이다. 지금은 재판이 끝난 뒤 재판장이 감정인을 평가해 연말에 부적격자를 가리는 사후관리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이마저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2023년 사법정책연구원이 내놓은 ‘민사건설재판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1년 전국 법원에서 공사비 등 감정인이 선정된 사건 1만1162건 가운데 평정 결과가 입력된 경우는 263건(2.35%)에 그쳤다.

게다가 재판부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개별 하자항목 가운데 통상 보수비용이 가장 큰 ‘층간 균열’이 대표적이다.

과거 법원은 △층간 균열폭이 0.3㎜ 미만인 경우 접착제와 방수페인트를 칠하는 ‘표면처리공법’을 △균열폭이 0.3㎜ 이상인 경우 균열 부위를 V자나 U자로 파내고 보수재를 채워 넣는 ‘충전식 보수공법’을 적용해 보수비를 산정했다. 비용으로 따지면 ‘충전식>주입식>표면처리공법’ 순으로, 충전식 공법을 적용하면 보수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16년 서울중앙지법 건설감정실무 개정 과정에서 균열폭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충전식 공법을 적용해 보수비를 산정하도록 지침이 바뀐 이후 층간 균열에 대한 과잉 감정이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충전식 공법으로 보수비를 받더라도 실제로는 표면처리공법만으로 보수 공사를 마친 뒤 남은 보수비는 다른 용도로 쓰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판결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될 정도다.

동일한 하자에 대해 국토교통부의 하자판정 기준과 법원의 건설감정실무에 명시된 하자판정 기준이 다른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건설감정실무가 소송실무상 규범화되다 보니 법원이 하자 발생 여부나 보수비용을 산정할 때 국토부 기준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폐해는 고스란히 분양대금에 반영돼 그 피해가 소비자와 주택건설업계 전반에 돌아갈 수밖에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자소송 전문가인 정홍식 법무법인 화인 대표변호사는 “건설분쟁에서 감정인의 감정 결과는 소송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감정 기준이나 방법에 대해 표준화된 기준이 없는 만큼 소송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세한 해법은 <대한경제>와 법무법인 화인, 대한건설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가 오는 19일 공동 개최하는 ‘아파트 하자소송 해소를 위한 세미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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