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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정상회담 첫날 베트남 하노이 회담장에서 악수를 청하고 있다./ 사진:연합 |
[대한경제=강성규 기자] 갈등 일변도로 치닫던 남북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12일 군 당국 등에 따르면 전날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를 전면 중단하자, 북한도 대남 소음방송을 다음날부터 중단했다. 이 대통령의 유화 조치에 화답한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만인 11일 우리 군에 오후 2시를 기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에서 가동된 지 1년여 만에 대북 확성기가 꺼졌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6월9일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단된 지 6년여 만이었다. 북한도 이에 대대적인 소음 방송으로 맞불을 놨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늘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이 청취된 지역은 없다”면서 “서부전선에서 어제 늦은 밤에 마지막으로 대남 방송이 청취됐고, 이후로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12일 서울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ㆍ15 남북정상회담 25주년 행사 축사를 통해서도 “소모적인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며 “평화, 공존, 번영하는 한반도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또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고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위기관리 체계를 하루빨리 복원하겠다”며 “이를 위해 중단된 남북 대화 채널부터 빠르게 복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의 제스처에 북한이 화답하면서 남북 관계가 화해와 대화 모드로 전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당장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북한은 이 대통령 당선 이후 사실만 간략하게 언급한 이후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한반도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견지하겠다는 의도로 여겨진다.
또한 북한은 최근 러시아와 ‘혈맹’ 수준의 밀착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북한의 우방국 중 하나인 중국이 미국과 첨예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큰 장애물로 지목된다.
남북이 ‘해빙’의 장으로 들어서려면 북미관계 회복이 물꼬를 터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미온적인 태도에도 대화 재개를 위한 ‘구애’를 적극적으로 보내고 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 수령을 북한이 거부했다’는 일부 보도에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서신 교환에 여전히 수용적(receptive)”이라며 “그(김정은)는 첫 임기 때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진전을 보길 원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친서 교환은 트럼프의 1기 집권 당시 김 위원장과 독특한 유대를 형성한 소통방식이었다. 무산 위기에 처했던 북미 정상회의를 재개하는 고리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안에서 백악관이 미국 주도의 북미 정상 간 소통 재개 시도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하지 않은 점이 가장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북미 대화 재개가 한국에 긍정적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가 암시한 북한에 대한 ‘핵보유국’ 지위 부여와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은 물론, 일본 등 주변국들에도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2019년 ‘하노이 노딜’로 한국의 민주당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한 만큼, ‘한국 패싱’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날 최종현학술원 워크숍에서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원칙을 명확히 하고 협상에 나서야 하며, 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의 과도한 요구에 대응하려면 협상의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사전에 정해 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성규 기자 g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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