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사업 부실 금융기관 전이 차단
민자사업 처리 절차 개선 필요성
채무불이행에 세금 투입 반복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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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권해석 기자]민간투자사업에 참여한 사업자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자금을 신용보증기금(신보)이 대신 갚는 대위변제가 30년만에 처음 나왔다. 신보가 민자사업의 마지막 안전판 역할을 한 것이지만, 부실 민자사업의 처리 절차를 손봐 세금 투입 가능성은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보 산업기반신용보증기금(산기반신보)은 BTO(수익형민자사업) 방식으로 추진된 전남친환경농수축산물유통센터가 광주은행으로부터 빌린 18억2000만원 가량을 대위변제했다. 지난 1994년 산기반신보가 설치된 이후 부실 민자사업에 산기반신보가 사업자를 대신해 PF 자금을 대신 갚는 대위변제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산기반신보는 민자사업자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PF 자금의 상환을 보증해주는 정책 금융상품이다. 금융기관이 빌려준 PF 미상환 위험을 없애 민자사업으로 자금 유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마련됐다.
산기반신보는 정부 출연으로 조성된 기금이어서, 대위변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민자사업 부실에 세금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전남친환경농수축산물유통센터는 지난 2012년 서울 개포동에 115억원을 투입해 건립된 시설이다. 전남도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축수산물의 유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추진됐고, BTO 방식을 적용해 민간사업자에게 운영을 맡겼다.
당초 2030년까지로 운영기간이 설정돼 있었지만, 매출 부진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협약 변경을 통해 지난해 전남도가 운영권을 조기에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PF 대출금 일부를 민간사업자가 상환하지 못하게 됐고, 이에 당시 보증을 제공했던 산기반신보가 대위변제에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산기반신보의 대위변제를 이례적인 일로 보고 있다. 민자사업이 부실화해 사업이 중단되면 주무관청이 사업시행자에게 지급하는 해지시지급금을 통해 PF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고, 해지시지금급이 충분하지 않으면 재구조화 등을 통해 정상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민자사업으로 추진돼 적자에 시달리던 서울 우이∼신설 경전철 사업이 사업주 교체를 통해 정상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사업 초기 3850억원 규모의 보증을 지원한 산기반신보도 대위변제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남친환경농수축산물유통센터는 대주단이나 보증기관 협의 없이 주무관청과 사업주가 운영 단축을 결정하면서 재구조화 논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보 측은 “협약 변경은 재무구조 등 전반적인 사업모델을 변경하는 것인 만큼 대주단이나 보증기관과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부실 민자사업 처리 절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번 대위변제로 민자사업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부실 위험이 금융기관으로 전이되는 일을 산기반신보가 차단하는 역할이 확인됐지만, 세금으로 민자사업 부실을 메워주는 일이 반복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근 산기반신보가 민자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보증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있고, 민자사업 대형화로 지원 규모 자체도 늘고 있어 대위변제 사례가 더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산기반신보는 작년에 3조1400억원의 신규 보증을 제공하면서 처음으로 연간 보증액이 3조원을 넘겼다. 지난해 말 기준 산기반신보의 누적 보증액도 40조5000억원에 달한다. 산기반신보는 올해도 3조원 이상의 보증공급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BTO와 BTL(임대형민자사업)을 혼합한 ‘대장∼홍대 광역철도 사업’에 7000억원의 보증 공급을 결정하는 등 올해 상반기에만 1조3000억원 규모의 보증을 지원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실 민자사업이 생기더라도 정리 대신 재구조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대위변제가 산기반신보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기반신보의 여유자금 규모가 1조원을 넘는 데다가 이번 대위변제 금액도 올해 책정한 대위변제 예산인 136억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
산기반신보도 민자시장 활성화를 위한 보증 공급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신보 관계자는 “생활형 SOC(사회기반시설)사업 등 지역 소형 민자사업의 안정성 확보에 산기반신보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지역 인구 소멸 방지와 지방 경제 활성화, 공공의 이익 실현을 위해 대규모 민자사업뿐만 아니라 지역형 소규모 민자사업에 대한 보증 지원도 계속 병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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