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비롯해 박수근의 득의작, 천경자의 미인도, 장욱진의 동화같은 작품, 유영국의 색면 추상화, 사실주의 거장 이인성의 대표작, 조선시대 중기 문신 120여의 필적이 담긴 귀중한 사료 등 국내외 미술품 187점이 이달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군다.
오는 24일 서울옥션(97점), 25일 케이옥션(90점)이 차례로 여는 초여름 세일 행사에는 모두 187점 추정가 총액 약 147억원 규모의 미술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지난달 기획 경매와 비슷한 규모지만 시장성이 있는 일부 작품들은 벌써부터 미술애호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 출범에 따른 자산 가격 상승 기대감이 더해지면서 이번 경매를 통해 하반기 미술시장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은 “미술시장은 아직 힘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함께 부동산 및 주식시장이 활력을 비축하고 만큼 조만간 아트투자 수요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출품작들 역시 비교적 검증된 작가들의 수작들인 데다 미술경기 회복 후 가격이 오르고 환금성도 좋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된다. 경매에 참여하려면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회원(무료)으로 가입한 후 서면, 현장, 전화 또는 온라인 라이브 응찰이 가능하다.
◆서울옥션 샤갈-천경자 그림 등 97점 경매
오는 24일 강남센터에서 세일행사를 진행하는 서울옥션은 총 97점을 경매에 부친다. 낮은 추정가 기준 약 64억원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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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의 '윤삼월' 사진=서울옥션 제공 |
서울옥션은 천경자의 1978년 작 '윤삼월’을 얼굴 상품으로 입찰대에 올린다. 세로 135.5cm, 가로 94.5cm 크기의 이 작품은 봄꽃, 사슴, 백조, 새 등 천경자의 대표적인 소재들을 환상적으로 구성해 새 봄의 충만한 기운을 담아낸 수작이다. 작품 이름 역시 윤달인 3월을 녹여냈다. 예로부터 윤달은 묘를 옮기거나 혼례를 올려도 탈이 없다는 길한 시기로 여겨졌다. 추정가는 8억5000만원~12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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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의 '꽃다발을 든 여인의 옆모습' 사진=서울옥션 제공 |
마르크 샤갈의 1981년 작 '꽃다발을 든 여인의 옆모습(Profil au Bouquet)'도 경매 앞줄에 세웠다. 여인의 옆모습을 몽환적인 색채로 꽉 채운 샤갈의 대표작이다. 여인 주위에 남성의 옆모습, 양, 바이올린 연주자, 춤추는 사람 , 해와 달 등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했다. 꽃다발은 연인을 상징하고, 바이올린은 샤갈의 유대인 정체성과 자전적 요소가 투영된 모티프로 여겨진다. 추정가는 3억~6억원이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1964년 작 ‘나무와 행인’도 경매한다. 작고한 이후 미술계 인사들이 기획한 유작전에 전시된 작품이다. 커다란 나무 옆으로 지나가는 아낙네와 아이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머리에 소쿠리를 올리고, 등에는 갓난 아이를 업고 있는 아낙네의 모습에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읽을 수 있다. 특유의 갈색조로 칠했지만 부분적으로 옅은 노란색과 하늘색을 더해 색감의 변주를 노렸다.
서울옥션은 한국 근대미술사를 집중 조명하는 특별 섹션 ‘모던 모멘트(Modern Moments)’를 새롭게 구성해 이인성 변시지 등 국내 근대 화가들의 희귀 작품도 내보인다. '폭풍의 화가’ 로 잘 알려진 변시지의 2.4m 대작 ‘폭풍의 언덕’ 은 제주 바다의 역동적인 파도와 강렬한 바람을 사실적으로 잡아낸 대작이다. 나무, 초가집, 말 등의 소재를 더해 제주만의 향토성을 살렸다. 변시지의 또 다른 작품 ‘런던 풍경’ 은 영국 런던 템스강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을 대차게 아우렀다.
이인성의 1961년 작 ‘사과나무’는 1935년 대구에 정착한 이후 향토적 소재를 심화시킨 작품이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사과나무에는 큼지막한 사과들이 매달려 있어 따듯함과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박영선의 ‘5월 16일 새벽’ 은 1961년 5.16 군사정변 당시 군용 차량이 한강 철교 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역사적, 사료적 가치가 높다. 황술조의 ‘경주 남산’, 이병규의 ‘여인상’, 우석 장발의 추상작업도 눈길을 끈다.
고미술 섹션에서는 귀중한 필적과 회화 작품들이 경매에 오른다. ‘구사선생조천첩 4권 일괄’은 1624년 조선중기 문신 권엽이 명나라에 사절로 떠날 때 받은 송별시를 모은 시첩이다. 고정호 서울옥션 홍보팀장은 “약 120명에 달하는 당대 문신들의 필적이 담겨 있어 조선 중기 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며 “시고 외에도 산수도와 사군자, 화훼, 초충도 등 다양한 그림 16폭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매에 앞서 진행되는 프리뷰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되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케이옥션 천경자 미인도 등 90점 경매
케이옥션은 작품성이 탄탄한 국내외 작가들의 수작들을 대거 경매에 부친다. 오는 25일 오후 4시부터 시작하는 경매에는 박수근을 비롯해 천경자, 장욱진, 하종현, 이건용, 국내외 작가 작품 총 90점을 라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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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노상' 사진=케이옥션 제공 |
케이옥션의 이달 경매의 백미는 뭐래도 박수근의 1964년 득의작 ‘노상’이다. 일상과 자연, 인물의 단순화된 형태와 화강암 같은 질감으로 한국 근대 구상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노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여성과 한 여성의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이 단순한 선과 형태로 표현된 게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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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의 'work' 사진=케이옥션 제공 |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 작가 유영국의 작품도 빼놓지 않았다. 경매 도록의 표지에 과감히 채용한 1976년작 '워크(Work)'는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산의 형상을 통해 동서양의 미감을 아우른 게 이채롭다. 화면 중앙의 주황색 삼각형은 산봉우리를 상징하며, 배경의 청록과 보라, 분홍이 어우러져 강렬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추정가는 4억~5억원으로 책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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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의 1990년 작 '여인' 사진=케이옥션 제공 |
케이옥션은 천경자의 1990년 작 '여인'도 전면에 내세웠다. 자신의 맏딸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인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잡아낸 ‘미인도’ 시리즈의 대표작이다. 손이천 케이옥션 홍보이사는 “대칭적인 얼굴, 짙은 아이섀도와 화려한 복장, 화면 위에 흩어진 트럼프 카드가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며 “우수에 젖은 검은 눈매에 얼핏 비치는 설렘은 고독한 감정을 극대화한 장치로 여겨진다”고 강조했다. 최초 5억3000만원부터 경매를 시작한다.
케이옥션은 이번 경매에 1960~70년대 실험미술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출신 작가들의 작품도 내놨다. 하종현의 '접합 17-91'은 추정가 3억3000만~5억7000만원, 최명영의 '평면조건 1706'은 7000만~9000만원을 제시했다.
해외미술 분야에서는 앤디 워홀, 제프 쿤스, 야요이 구사마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대거 출품됐다. 구사마의 'Hat'은 4억5000만~8억원, 제프 쿤스의 'Encased-Five Rows'는 최고 20억원의 추정가가 매겨졌다. 타카시 무라카미, 데미안 허스트, 우고 론디노네, 앙헬레스 아그렐라, 미셸 들루크루아 등의 작품도 경매에 오른다.
경매 출품작은 오는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관람료는 없다. 경매 당일인 25일에는 회원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현장 참관이 가능하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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