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위험 자초하는 일”
강남구 “문제 생기면 책임지겠다”
장마철 앞두고 주민 불안 증폭
“치유숲 원하는 구민 여론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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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강남구 개포동 한 아파트 단지에 붙은 대모산 파크골프장 건립 반대 현수막. / 사진 : 안윤수 기자 |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2011년 여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날. 대모산 자락에 사는 개포동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앞까지 밀려온 토사를 눈앞에서 목격했다. 같은 날 서초구 우면산에서는 산사태로 16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쳤다. 계곡을 따라 형성된 급경사 지형, 풍화된 토질, 그 아래 촘촘히 들어선 주거지까지 수해에 취약한 환경에서 대모산과 우면산은 닮아 있다.
14년이 지났지만, 주민들 기억 속에는 그날의 ‘진흙색 공포’가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강남구가 대모산 자락을 파크골프장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억은 다시 현재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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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강남구가 대모산 부지에 조성하기로 발표한 ‘강남 힐링 파크골프장’. / 사진 : 강남구 제공 |
강남구는 지난 1월 개포동 140-1번지 일대를 대상으로 한 ‘강남 힐링 숲 조성(2단계)’ 사업을 발표했다. 구는 “경작지였던 부지를 숲으로 되살리는 복원 계획”이라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설계 도면상 대부분이 체육시설로 채워져 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구가 공개한 사업 도면을 보면 전체 2만5000㎡ 부지 중 상당 면적이 계단식 파크골프장(18홀)으로 계획돼 있다.
대모산은 흙산에 가까운 편마암 지질과 집중호우에 취약한 풍화토층으로, 산사태 우려구역이 포함된 지역이다. 이창우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대모산은 흑운모 편마암 기반의 풍화지형으로, 집중호우 시 토사 유실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대모산 일부 구간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골프장 조성을 위해 흙과 바위를 깎아 평탄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해 전문가들은 위험성을 지적한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가파른 지형을 절개해서 골프장을 만드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형곤 강남구의원도 “1만㎡ 면적에 5㎝ 높이의 빗물이 고이면 약 500t의 수압이 발생하는데 이는 산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상당한 물리적 힘”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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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 자락길 입구. / 사진 : 안윤수 기자 |
인근 구룡마을 역시 반복적인 수해를 겪어온 만큼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극심하다. 주민 박모 씨(71)는 “나도 (파크골프장을 이용하는) 노인이지만, 집 위에 있는 산이 무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게다가 강남구는 이미 세곡동에 서울시 최대 규모인 27홀 파크골프장을 운영 중이다. 김 의원은 “강남구의 65세 이상 어르신은 약 8만6000명에 이르지만, 파크골프 동호인은 800명에 불과하다”며 “1%도 안 되는 인원을 위해 추경 예산 20억원(실내장 4억4000만원, 대모산 파크골프장 16억원)을 편성한 것은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잡초 제거, 고사한 잔디 보충 등 관리 인력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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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토사가 남부순환도로와 방배동 아파트를 덮쳐 1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남부순환로 복구작업을 위해 중장비와 인력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 / 사진 : 안윤수 기자 |
강남구는 “산사태 위험은 없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자연재해는 사후 책임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개포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반대 비율은 90%를 넘었다.
이들은 단순한 반대를 넘어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2022년 강남구 자체 타당성 조사에서도 주민 선호 시설은 △1위 ‘숲치유센터’ △2위 ‘식물원’ △3위 ‘숲 체험시설’ 순이었다. 파크골프장은 아예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파크골프장은 이용객이 한정적이고, 겨울철과 장마철 등 이용 가능 기간도 제한적이다. 반면 숲 중심의 공원이 조성된다면 주말마다 수천명이 가족 단위로 찾을 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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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위치한 서울 최대 파크골프장인 탄천파크골프장. / 사진 : 박호수 기자 |
특히 인근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입주민 87%는 “숲을 바라보며 얻는 정서적 안정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숲 중심 공원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통장단 등 지역 리더들도 같은 입장이다.
더구나 현재까지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ㆍ행정적 요건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도시 산지의 위험도를 기준으로 개발계획을 검토해왔으며, 대모산은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반복되는 집중호우 속에서 도심 개발의 방식과 우선순위는 더욱 치열하게 따져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박 교수는 “주민들의 우려를 해소하려면 서울시가 체계적으로 구축해온 도시 산지 관리기준에 따라 이번 사업도 정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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