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ㆍ저서 등 결과물 요구 없어
연구자들에게 안정적 환경 제공
![]() |
지난달 9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이석재 아모레퍼시픽재단 이사(왼쪽부터), 서경배 아모레퍼시픽재단 이사장과 장원 인문학자 5기에 선정된 신성진 연구자, 김형진 연구자, 김진 연구자, 정진혁 연구자, 강태웅 교수, 민은경 아모레퍼시픽재단 이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아모레퍼시픽 |
[대한경제=오진주 기자] “아무것도 안 쓰셔도 됩니다. 생각만 하시면 됩니다.”
인문학 학자들에게 연구비 지원 사업은 늘 부담이다. 민간 기업이 지원금을 줘도 과학기술 분야처럼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다르다. 아모레퍼시픽재단이 2020년부터 운영 중인 '장원(粧源) 인문학자' 지원 사업은 선정된 연구자들에게 연구 결과물을 논문이나 저서 형태로 요구하지 않는다. 매달 400만원씩 4년 동안 연구비를 지원할 뿐이다. 연구자들은 지원 기간이 끝난 뒤 보고서만 제출하면 된다.
장원 인문학자 사업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비성과 중심의 순수 연구 지원 프로그램이다. '잘 가꾸고 다듬은 근원'이라는 뜻으로 지은 서성환 선대회장의 호 '장원'의 의미를 이어 받았다.
재단은 장원 인문학자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미(美)를 탐구하고 있다. 서구 중심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아시아 각 지역이 지닌 아름다움을 조명하기 위해 시작한 '아시아의 미' 연구는 '아시안 뷰티'를 탐색하는 공동 연구팀 '미 탐험대'를 꾸리기도 했다.
2023년에는 인문학 외 문화 전반으로 지원 범위를 넓혀 K-컬처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문화와 예술' 연구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사업을 통해 연구자들은 '인도티벳 음악'과 'K뷰티를 품은 이슬람', '한인 디아스포라 여성' 등 특색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연구 지원 외에 책 출간을 돕는 '여성과 문화' 사업도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 여성과 여성 스타들의 삶 등 다양한 여성들의 삶이 책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모레퍼시픽이 인문·문화학자를 지원하는 건 생각하는 시간과 힘에 투자하는 과정 중 하나다.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사유하는 방식'이라는 기업 철학과 맞닿아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미술관과 오설록 등 예술 사업이 아름다움의 외연을 넓혔다면, 인문학자들의 연구는 내면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연구 결과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지원 사업은 실제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장원 인문학자 1~3기 연구자 중 4명이 국내 대학에 교수로 임용됐다.
오진주 기자 ohpearl@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