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것 같다.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은 SOC 투자를 통한 경제 활성화는 구태의연한 정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경제성장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SOC의 지속적인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과거 정부는 국내 SOC 스톡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SOC에 대한 재정 투자를 축소했다. 2003〜2005년 전체 SOC 예산은 1.9%, 그 중 교통 SOC 부문은 3.0% 감소했다. 하지만 국가물류비는 2000년 77조원에서 2006년 106조원으로, 교통혼잡비용은 2000년 19조4000억원에서 2007년 25조8000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물류비는 15.9%(2006년)인 데 비해 미국과 일본은 각각 9.9%, 8.4%로 우리나라의 물류비가 이들 국가의 1.7배 수준이다.
교통부문 SOC 스톡을 국가별로 비교해 보면 국토계수당 도로연장은 우리나라가 1.47인 데 비해 미국과 일본은 각각 3.78, 5.35로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별 ㎞당 자동차 대수도 30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철도는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 우리나라와 국토계수가 유사한 4개국과 비교할 때 이들 나라 평균의 40〜50% 수준에 불과하다. SOC 스톡의 국제 비교나 국내 물류여건 등을 감안할 때 SOC 시설의 지속적인 확충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2008년의 고유가, 2009년의 미국발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게 되자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경제의 성장동력 확보와 경기 활성화를 위해 SOC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전체 SOC 예산은 2007년 18조4000억원에서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19조6000억원, 24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5%, 26.0%로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정책기조는 최근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2008년과 2009년의 경우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SOC 투자를 확대했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경기가 회복되고 있으므로 SOC 예산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정황은 2010년도 정부 예산(안)에 나타나고 있다. 2010년도 정부예산(안)을 보면 전체 예산은 2009년 대비 2.5%로 증가했고, 그 중 외교・통일, R&D(연구개발), 보건・복지 분야는 각각 14.7%, 10.5%, 8.6% 증가했다. 하지만 SOC 예산은 3조5000억원의 4대강 사업을 포함하는 데도 0.3% 증가한 24조8000억원에 그쳤다. 더욱이 교통부문의 SOC 예산은 17.1% 감소했다. 그 중 도로 17.6%, 철도 14.3%, 도시철도 28.4%, 해운・항만 13.8% 축소됐다..
교통시설 SOC 예산 축소에 따른 가장 큰 문제는 일부 공공건설현장의 공기 지연이다. 일례로 일반 국도건설 예산은 2009년 1조 143억원에서 2010년(안)은 7305억원으로 28% 축소됐다. 각 건설현장별로 공사 규모 및 공정률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현장당 적정 공사비 수준을 산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도로공사의 경우 적정 공사비는 현장당 연간 15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10년도 일반국도 현장은 총 138개로 현재 예산(안) 수준에서는 1개 현장당 평균 52억원의 공사비가 배정될 수밖에 없다. 이 수준은 150억원에 크게 미치지 못하므로 공기 지연이 우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최근 정부가 마련한 ‘2009〜2013 국가재정운용계획(안)’은 향후 5년간 4.2% 총지출예산 증가를 계획하고 있다. SOC는 2.0% 증가하지만 총지출예산 중 SOC 비중은 2010년 8.68%에서 2013년에는 7.96%로 감소하고 있다. 향후 정부지출 중 SOC에 대한 재정투자의 중요성은 점차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부족한 정부 재정을 보완하기 위해 민자사업을 활성화해 SOC 시설을 확대할 계획이다.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한시적으로 증가했던 SOC 재정 투자를 축소하고 민자사업 활성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민자사업들은 사업제안 당시와 비교할 때 원자재 가격 상승, 금리 상승 등 사업여건이 악화돼 공사비 보전이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6〜7년 전 제안된 고속도로 민간제안사업 대부분이 금융약정이 체결되지 않아 민간사업자는 실시계획신청 승인을 최대한 연기하는 등 사업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2007년 8월에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평택~시흥, 인천~김포, 안양~성남 등 3개 민자도로가 2007년 내에 착공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평택~시흥간 민자도로만 2008년 3월에 착공되고 나머지 사업은 착공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평택~시흥간 민자도로도 아직 자금차입 계획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 같은 현상은 민자사업의 사업리스크가 커서 금융권은 투자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제도가 폐지됐으나 그 보완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투자 기피의 가장 큰 이유이다. 민자시장의 위축이 지속될 경우 기존에 제안된 사업들의 사업기간 지연은 물론이고 전체 사업비중의 상당부분을 민간투자에 의존하는 광역권 30대 선도 프로젝트의 원활한 추진도 장담하기 어렵다.
SOC 투자의 수준은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확충”이라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결정돼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SOC 예산, 특히 교통부문의 SOC 예산 축소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전체 예산규모의 조정을 위해 불가피하게 교통시설의 예산을 조정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자칫 지금의 예산 축소가 공기 지연으로 장차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둘째, SOC 투자가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는 대안 발굴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감 및 환경 개선이 가능한 분야의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거나, 전통적인 건설기술과 첨단기술과의 융합으로 건설기술의 발전과 함께 타 산업의 육성을 도모할 수 있는 신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해외건설시장 진출과 새로운 건설분야의 개척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건설업계, 학계, 정부 등 범건설산업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교통시설특별회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교통시설 확충은 막대한 투자비가 장기간에 걸쳐 투입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대단히 중요하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 없이는 중장기 SOC 투자계획의 달성이 어렵고 적기의 시설 확충은 더더욱 곤란하다. 따라서 올해 말로 폐지 예정인 ‘교통시설특별회계’의 지속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과거 도로정비사업특별회계(1968〜1976년)가 폐지된 후 10여 년간 교통시설 예산은 전적으로 일반회계를 통해 조달됐다. 그런데 이 시기에 교통시설 예산이 급감해 1980년대 후반까지 교통시설 투자가 미흡했다. 당시의 투자 미흡이 1990년대 초 교통혼잡과 물류비용 급증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날의 오류를 또다시 재연해서는 안된다. ‘교통시설특별회계’는 최소한 국가기간교통망 계획이 완료되는 2019년까지 존속해야 한다. 그리고 ‘교통시설특별회계’의 재원 확대를 위한 다각적인 대안 검토가 필요하다.
넷째, 민간투자제도의 효율적 활용이 필요하다. 민간투자를 정부재정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투자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마인드보다는 민간이 창의와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업에 국한해 민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민간투자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사업을 대상으로 추진해야 하고, 사업성이 부족할 경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부지원의 범위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민자사업 추진 지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자사업 활성화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금융권의 투자유인 제고를 위해 보다 전향적인 민자사업 활성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무상사용기간 연장을 통해서 운영수익을 보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민자사업의 목표 수익률을 협상에서 정하고 무상사용기간 동안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무상사용기간의 연장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민자유치건설보조금 지원규모의 확대로 무상사용기간을 단축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2009년 5월)가 천안~논산간 민자도로 사례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MRG(최소운영수입보장) 대신 민자유치건설보조금 지원을 확대할 경우 운영기간 동안의 정부지출을 1997년 현재가치로 815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외에도 부대・부속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민자사업의 수익률을 향상시켜 운영기간 중 시설요금 인하 및 MRG 부담 완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
SOC 시설은 몇 년간의 반짝 투자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시설 구축에도 장기간이 소요되고,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한다. 영국은 19세기부터, 미국은 20세기 초부터 SOC 투자를 본격화했다. 즉 주요국의 SOC 시설 축적의 역사는 매우 길다. 이들 국가들은 장구한 세월에 걸친 노력의 결실을 지금 보고 있으며, 지금도 SOC 확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SOC 투자가 본격화됐다. 그나마 시대적・정치권의 여건에 따라 SOC 투자를 확대 또는 축소를 반복한 듯싶다. SOC는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필수시설이기 때문에 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적정의 투자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박용석 건산연 연구위원.
공동기획: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