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말 노무제공자제 도입을 요구하는 법안이 제출됐다(2009년 12월 18일). 노무제공자 제도란 2008년에 폐지된 시공참여자 제도와 유사한 내용으로 동 제도의 핵심은 건설현장에서 작업 팀을 이끄는 팀장(경력이 오래 된 숙련기능인력)에게 합법적으로 도급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시공참여자 제도는 많은 폐해를 야기했다는 이유로 폐지됐는데, 그와 유사한 제도를 재도입하려고 하므로 그 이유와 영향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008년에 폐지된 시공참여자제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동 제도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계기로 부실시공을 근절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97년에 도입됐다. 건설산업기본법령 내용을 종합하면 ‘시공참여자란 전문건설업자의 관리책임 하에 공사의 시공에 사실상 참여한 종사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재하도급은 하도급제한에 위배되지 않는 예외임을 명시했다. <그림 1>의 ㉮와 ㉯는 물론 ㉰의 형태까지 합법이었다.
2. 시공참여자제 운영 실태 및 문제점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하면 2단계(일반-전문-시참)까지 하도급이 허용되고 있으나 팀∙반장의 응답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3단계 이상을 넘어가는 불법하도급(그림 1의 ㉱ 이하)이 약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시공참여자 제도라는 지적이 많았다. 또한 다단계 하도급을 합법 도급으로 위장하는 방법으로 악용됐다.
시공참여자 제도는 시공참여자에게 사업주의 지위를 부여했으나 이들은 대체로 숙련인력 중 한명으로 사업주로서 행정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건설업자는 근로계약 체결, 사회보험 관리, 심지어 소규모 공상처리까지 시공참여자에게 전가했다. 전문건설업자는 고용과 관련된 행정 및 비용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나, 반대로 건설근로자는 고용 관련 제도 및 사회보험 등 모든 공식제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음이 명확해졌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온존시킴으로써 건설생산 관행의 개선 가능성을 봉쇄하게 됐다. 부실업체의 과당경쟁에 의한 저가낙찰을 부추기게 됐고, 그 결과 ‘제 살 깎기’ 경쟁이 만연되는 여건을 조성했다. 불법으로 일괄 하도급 주는 부실업체가 직접 시공하는 성실업체에 비해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우월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실공사비 누수에 따른 생산물 부실화의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는 건설산업 및 건설업체의 위상과 존립의 명분을 약화시켰다. 부족한 공사비는 근로조건 악화 및 임금 저하로 표출됐고, 기존 기능인력의 유출과 신규 기능인력의 진입 기피를 초래해 기능인력 기반의 약화와 내국인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시공참여자에게 하도급을 줄 경우 전문건설업체의 실제 시공능력은 저하되는데, 이것은 전문건설업체의 위상 저하를 가져왔다.
시공참여자에 해당하는 팀∙반장에 대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설문조사(2006)에 의하면 동 제도 도입 이후 ‘부실시공이 감소했다’(17.9%)보다는 ‘더 증가했다’(37.5%)가 많고, ‘다단계 하도급이 감소했다’(7.8%)보다는 ‘더 증가했다’(55.4%)가 많다.
3.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과정과 여건 조성의 필요성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2003년에 시공참여자 제도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2007년까지 이어진 논의과정에서 일반건설업자∙전문건설업자∙근로자∙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논의 결과 동 제도의 폐해가 심각하므로 2008년에 이를 폐지하되, 향후 전문건설업자가 직접 시공 및 고용의 주체가 되므로 여건을 정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때 논의됐던 필요여건은 크게 직접시공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적정 공사비의 확보, 고용비용 경감, 행정부담 경감 등이었다. 반대로 여건을 갖춘 후 시공참여자 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다단계 도급으로 인해 고용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는 어떠한 제도 개선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 폐지 후 보완’의 수순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시공참여자제도의 폐지를 건설 관련 제도사 측면에서 보면 과도한 도급 생산에 따른 거래비용의 과다 지출이라는 폐해를 인식하고 직접생산의 방향으로 회귀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4. 직접시공의 장점 및 전문건설업자의 위상 제고
시공참여자 폐지에 따른 현장의 변화 중 대표적인 것은 전문건설업자와 근로자간 고용계약 체결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고용계약 체결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공참여자 제도가 존재했던 2004년에는 ‘서면으로 계약했다’는 응답이 22.2%에 그쳤으나, 시공참여자 제도가 폐지된 이후인 2009년에는 65.2%로 높아졌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전적으로 시공참여자 제도의 폐지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폐지 이전에 비해 합법적인 건설업자와 근로자간 계약이 이루어지는 관행이 급속히 확산된 것은 건설현장에서도 실제로 확인됐던 바다. 고용계약 체결은 임금 체불로부터의 보호 및 사회보험 가입과 보호, 그리고 근로경력 관리의 가능성 등을 높일 수 있는 건설근로자 고용개선의 핵심 기제다. 따라서 여타 공식적인 제도의 적용 가능성도 높아졌다.
한편 <그림 4>에 의하면 직접시공의 가장 큰 장점으로 ‘책임시공에 의한 품질 확보’에 팀∙반장과 전문건설업자 양자의 인식이 일치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시공참여자 제도가 폐지되면서 전문건설업자는 ‘직접 시공’과 ‘직접 고용’(투입기간 중 고용관계, 정규직 고용이라는 의미는 아님)의 주체가 됐다. 시공참여자에게 도급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소멸됐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전문건설업자는 직접 시공 및 고용의 주체로서 위상이 높아졌다. 높아진 위상은 직할시공제와 주계약자 공동도급제 논의과정에 반영됐다. 양자 모두 한 단계의 도급단계를 줄이고 직접 시공함으로써 공사비를 절감하고 강화된 관리∙감독을 통해 품질을 높이려는 사회적 명분에 기초하고 있다.
5. 직접 시공 여건의 불비와 재도입 요구
시공참여자제도 재도입 요구의 진정한 이유는 직접 시공 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데 있다. 2010년 1월 현재 시공참여자 제도가 폐지된 지 2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여건이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은 직접 시공 및 고용의 부담을 떠안은 전문건설업자가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벗어버리기 위해 과거의 제도를 재도입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요구대로 재하도급이 허용될 경우 직접 시공과 직접 고용이 다시 시공참여자(노무제공자) 손으로 넘어가 전문건설업자의 위상과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요구는 자신이 주장했던 직할시공제의 도입 명분마저 약화시킨다. 전문건설업자 위 단계의 도급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래 단계의 도급은 신설하자는 모양이 되어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최근 노무제공자의 도입을 요구하면서 현장의 실상과 맞지 않는 주장마저 출현하고 있다. 첫째, 근로기준법 제44조의 2(건설업에서의 임금 지급 연대책임)가 신설됨으로써 다단계 하도급에 의한 ‘임금 체불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됐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실상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임금 체불 문제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전문건설업자(갑) ⇔ 노무제공자(을) ⇔ 건설근로자(정)”의 도급구조 하에서 전문건설업자와 근로자간 간접적인 고용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실태를 감안할 때 전문건설업자(갑)와 노무제공자(을)(또는 시공참여자) 간 계약은 체결될 가능성이 있으나, 노무제공자의 행정력 부재로 노무제공자(을)(또는 시공참여자)와 건설근로자(정) 간 고용계약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경우 근로자의 취업 여부 자체에 대한 판단이 어려워지면서 임금 체불 문제는 다시 불거지게 된다. 둘째, 이러한 상황이 예견되는 가운데 ‘근로자 보호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일고의 여지가 없다. 셋째, 공식제도에서 누락돼 경력관리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기능공 능력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한다’는 주장 역시 해괴하다. 폐해의 근원 중 하나인 ‘돈내기식 도급’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넷째, ‘직접시공에 따른 불필요한 경비를 절감한다’는 주장은 스스로 페이퍼컴퍼니라는 자인이거나 근로자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불필요한 경비’의 내역을 살펴보면 건설업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업무이거나 근로자 보호를 위해 당연히 지급해야 할 비용들이기 때문이다.
6. 상생을 위한 진정한 해법 : 직접 시공 여건 조성
무릇 제도란 관련 이해당사자가 모두 상생할 수 있을 때 정착된다. 또한 국민에게 양질의 생산물을 공급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궁여지책으로 요구되고 있는 노무제공자 도입(시공참여자 제도의 재도입)이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진정한 해법은 모두가 공멸하는 시공참여자제 재도입이 아니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직접 시공 여건의 조성에 있다.
첫째, 직접 시공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직접 시공을 수행하는 건설업체가 보유한 시공 요소에 대해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이들이 페이퍼컴퍼니보다 수주를 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적정 공사비가 확보되어야 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설문조사(2006년) 결과에 따르면 직접 시공이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나치게 낮은 공사비’였다. 현행 방식은 발주금액과 낙찰금액이 연쇄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구조에 빠져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Safty Net)를 마련해 건설업계 전체의 파이를 키움으로써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과 호주 공공공사의 공사비 확보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적정 노무비의 확보야말로 직접 시공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 고용비용을 경감해야 한다. 사회보험료∙산업안전보건관리비∙퇴직공제부금 등을 낙찰률과 무관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고용관리책임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생산중단시기의 인건비도 지원한다. 셋째, 행정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 잦은 이동과 소득 변동을 감안해 건설고용보험카드를 전면 보급하고 사회보험 및 퇴직공제 등의 적용∙징수를 일원화하도록 한다. 이러한 경감 조치 역시 적정 노무비의 확보와 병행되어 합법적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돼야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심규범 건산연 연구위원
<공동기획: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