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기업이 수주한 사업의 건당 평균 계약금액도 2007년을 기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비해 2.45배가 증가했고, 플랜트 건설사업은 무려 8배에 달한다.
수주사업 대부분을 차지하는 플랜트 건설사업의 발주방식도 변화했다. 기존 시공 중심 사업에서 EPC(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 총괄계약 사업으로 바뀌었다. 단위 사업의 계약금액도 크게 늘어 한화로 1조원(약 10억 달러)이 넘는 것도 많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건설기업의 역할도 변화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즉, 이제는 국내 건설기업이 과거의 단순 시공계약자 역할이 아닌 구미 유수한 선진기업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선진기업의 사업관리(PM)와 시공계획 및 관리 업무에 대한 사례분석을 통해 국내 건설기업의 현안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주력 해외시장의 사업환경
2014년에 준공 예정인 해외사업은 374건에 약 74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740억 달러에 해당하는 사업 대부분은 중동지역에서 수주한 플랜트 건설사업이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내 건설기업이 주력 해외시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걸프만 연안회의(GCC) 국가는 한 마디로 발주자의 리스크를 계약자에게 전가하고 발주자 대리인(Project Management Consultant, PMC)으로 선진국 용병을 고용하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책략을 구사하고 있다.
플랜트 EPC 건설사업은 최적화된 공기 안에 시설물을 건설하려고 패스트트랙(fast-track)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GCC 발주자는 발주자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업 추진상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계약자에게 일원화하는 총액계약일괄도급(Lump Sum Turn-Key, LSTK) 방식의 계약을 선호한다. 특히 국내 건설기업이 최근 5년 동안 수주한 플랜트 EPC 사업은 대체로 적정 사업공기보다 짧은 기간을 계약 공기로 하고 있으며, LSTK 방식의 계약으로 체결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계약 조건에서 발주자는 계약자가 발생시키는 공기지연에 따른 지체상금(Liquid Damage)과 계약자의 설계변경에 대한 클레임을 상쇄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특히 GCC 국가의 발주자는 본인의 부족한 사업관리 역량을 보완하고 이러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미국 및 유럽의 선진건설사를 자신의 대리인(PMC)으로 고용하고 있다.
△해외 주력 상품의 잠재적 리스크
미국 컨설팅기관인 IPA(Independent Project Analysis)의 보고서에 의하면 공기 단축(fast-track) 방식을 적용하는 사업은 일반공사에 비해 분쟁 발생이 약 5배나 많고 LSTK 계약 방식으로 추진되는 사업은 2건 중의 1건에서 클레임이 발생하고 있으며, 클레임 금액은 계약금액의 30%에 달한다. 또한, 저가 입찰금액의 규모에 따라 10% 저가 입찰한 사업에서는 클레임 발생 비율이 40%이지만, 20%로 저가 입찰한 10개 사업 중 7개 사업에서 클레임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동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는 총액EPC계약이 대부분이고, 많은 프로젝트가 패스트트랙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국내 건설기업은 상당한 리스크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던 해외사업 저가수주라는 리스크가 더해진다면 국내 건설기업의 잠재적 사업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해외 건설시장에서의 핵심 역량
중동 플랜트 EPC 건설사업에서 PMC 용병은 계획 및 엔지니어링 단계에서부터 개입하는데, 이 시점에서부터 계약자 엔지니어와 PMC 엔지니어 간의 진검승부가 벌어진다. 이 싸움에서 계약자가 지면 계약자는 제안서에서 제시한 공정 일정계획과 자사 공급망(Supply Chain, SC)을 수정해야 하는 등 대혼란에 빠진다. 또한, 설계 엔지니어가 설계 현안에 대해 PMC 엔지니어를 설득하지 못하면 의사결정이 지연된 시간만큼 현장에서는 준공일자를 맞추기 위한 공기단축이 필요하다. PMC를 능가하지 못하는 엔지니어링 역량은 착공과 동시에 현장을 ‘돌관공사’ 모드의 공사수행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사업환경을 고려해서 전문가들은 엔지니어링(Engineering) 역량과 사업관리(Project Management, PM) 수행능력을 해외 건설시장의 핵심 역량으로 꼽고 있다. 문제는 엔지니어링 역량은 하루아침에 배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해외시장에서 전통적으로 한국 건설기업의 핵심역량이었던 시공관리(현장관리) 역량을 제시한다. 현시점에서 해외 건설시장에서의 국내 건설기업의 핵심 역량은 사업관리(PM)와 시공관리가 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현안을 분석하고 이들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국내 건설기업의 사업단계별 사업관리 현안
-사업준비 단계
선진기업은 입찰준비 단계를 사업의 시작으로 보고 사업책임자(PMr, Project Manager)를 이 단계에서 지명해 수주와 수행이 이원화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반면에 국내 건설기업은 해외 영업조직과 견적조직이 중심이 되어 제안작업을 수행하고 있어 사업 수주와 사업 수행의 이원화가 불가피하다.
국내 건설업체의 사업준비 단계 업무는 주로 개인의 능력에 의해 추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선진기업은 경험지식을 시스템화하고 본사 전문가의 지원을 제도화하는 등 막강한 기능을 갖추고 있어 개인의 능력보다는 시스템 지원에 의한 제안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사업계획 단계
사업수행계획을 확정하고 사업관리시스템의 구축·운영에 착수하는 것이 사업계획 단계의 주된 업무이다. 선진기업은 이러한 업무를 해당 기업 차원에서의 사업관리를 위해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계약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성과품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른바 ‘계획 따로, 실행 따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선진기업은 회사 고유 브랜드의 표준사업관리시스템을 사전에 개발해 놓는다. 계약이 체결된 이후, 본사의 관련 전문가 조직은 사업조직을 지원해 사업수행계획을 수립하고, 표준사업관리시스템을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해 2∼3개월 안에 해당 사업의 사업관리시스템이 가동되도록 한다.
-사업수행 단계
사업계획에서의 부실한 준비 때문에 국내 건설기업은 해외사업에 대한 정확한 평가뿐만 아니라 예측 기능이 마비된 상태로 사업을 수행한다고 해도 그리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본사가 사업(현장)의 정확한 상태를 진단하지 못해 예방적 지원이 불가능하다.
선진기업은 사업(현장)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점이 발생하면 기동타격대 성격의 본사 전문가 조직을 동원해서 단시간 내로 선제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손실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발주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어내 후속 사업 수주에 이를 활용하고 있다.
-사업종료 단계
선진기업은 주요 사업이 준공되면, 사업에 참여한 핵심 인력은 신규 사업에 투입하지 않고 수개월 동안 당해 사업의 경험자료를 정리하는 것을 내규로 정하고 있다.
△시사점과 결어
선진기업은 본사ㆍ사업간 자사 브랜드의 표준 사업관리시스템을 기본 플랫폼으로 개발했다. 그리고 이를 해당 사업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며 운영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적시에 해결해주는 기동타격대 성격의 본사 전문가 조직을 상설화해 가동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는 동시에 회사의 경험 자료를 향후 입찰 및 사업계획 수립에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다. 사업 수행자의 개인 지식을 회사의 지식으로 구축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한 것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선진기업은 프로세스·시스템·인력 등의 관점에서 막강한 기능을 구축하고 가동하고 있다.
국내 건설기업이 해외 건설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위상을 확보하고 성장을 보장하려면 선진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사업 수행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역량은 최고 경영진의 의사결정 없이는 어느 하나도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없다. 즉, 회사 경영전략의 변경이 전제돼야 할 것도 있고, 적지 않은 경영자원의 투입이 필요한 것도 있다. 위의 모든 것을 동시에 추진하면 좋겠지만, 국내 건설기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마스터플랜을 마련해 단계별로 관련 역량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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