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과 3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 그리고 7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부처별, 전문기관별 통일전략 수립도 가속화되고 있다. 반면 분야간 단절된 경우가 많다. 북한의 재건에 더해 한국 건설의 재도약 기회가 될 통일한반도의 인프라 건설계획만 해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 등 전반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대박’ 혹은 ‘쪽박’이란 극단으로만 나뉜다. 통일 후 나올 거대한 시장에만 관심이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려면 통일비용의 약 40%로 예상되는 인프라 건설비와 개발기간을 단축할 밑그림과 이를 뒷받침할 기술개발 전략 등을 포괄한 종합적 인프라구축 마스터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의 인프라 현황을 정확히 조사ㆍ분석ㆍ제공할 통합정보시스템과 인프라 유형별 공급전략은 물론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한 대안까지 담은 인프라구축 및 관리기술 마스터플랜까지 수립해야 앞서 통일한 독일이 겪은 천문학적 예산낭비 등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한반도의 건설정책과 제도는
국토인프라의 수요와 공급은 건설산업의 정책ㆍ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건설정책은 사용자의 눈높이와 산업 수준의 영향을 받는다. 자유시장 경제 아래 경쟁을 기본으로 한 한국과 사회주의 경제식 배분을 기본으로 한 북한의 법ㆍ제도와 산업 수준은 확연히 다르다. 남북한 경제상황도 GDP와 1인당 국민소득 차이가 통일 당시 동ㆍ서독(2배와 8배)보다 월등한 61배와 30배에 달한다. 이런 차이를 종합적으로 감안한 통일한반도의 새 건설 법ㆍ제도를 정립해야 한다.
국가 건설산업의 4대 골격은 건설산업 정책, 국토인프라 기본정책, 도시ㆍ주택 및 특수목적성 단지조성 정책, 건설서비스 거래정책이다. 건설산업 정책을 규율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술진흥법, 건축기본법 등의 법령부터 북한 법제와 연계해 재정립, 통폐합해야 한다. 다만 지향점은 글로벌 시장과의 호환성을 확보하는 쪽이어야 한다. 국토인프라 정책의 핵심법령인 국토계획이용법 등 국토 관련 법령도 통일정부의 국토건설을 담당할 정부 및 산하 공공기관의 조직까지 포괄해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도시ㆍ주택정책 분야에서는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과 인구를 분산할 수도권 규제를 수술하는 한편 북한의 특수상황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한 신도시ㆍ임대주택ㆍ경제특구 등 특수 목적성 단지 및 주택공급 방안을 포괄한 정책을 정립해야 한다.
건설서비스 및 거래정책은 4대 요소인 건설 표준ㆍ기술, 생산체계, 공급구조, 기술ㆍ기능인력 등의 전 분야에 걸쳐 완전히 수술해야 한다. 건설산업의 생산체계는 배타적 업역구조로 대표되는 한국 제도와 계획경제 아래 업역ㆍ업종에 따른 기업 자체가 없는 북한 제도의 특성을 감안하되 지향점은 글로벌 스탠더드여야 한다. 건설업종별 면허나 등록제, 나아가 도구 및 장비의 생산과 공급역량 차이까지 감안한 건설 중장비 공급구조까지 수술하는 일은 통일한반도의 인프라 구축에 대비할 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남북한간 질적 차이가 큰 기술ㆍ기능인력 문제도 격차를 좁힐 촘촘한 교육 및 양성프로그램으로 대비해야 하며, 이를 실현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통일한반도 국토인프라 구축 시나리오는
북한의 인프라는 한국의 20% 수준으로 평가되지만 인프라의 질까지 따지면 더욱 열악하다. 통일한반도의 국토인프라 구축방식은 양적 목표, 질ㆍ성능적 목표, 부문별 우선순위 등 3가지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 국토인프라 보유량 목표는 한국의 현 인프라 보유량, OECD 가입국 평균, 국민소득 5만달러 수준을 기준치(100)로 보는 3가지 접근법이 가능하지만 한국의 현 보유량 기준은 남쪽 인프라 공급서비스 기반 붕괴 우려가, 나머지 2가지는 천문학적 자금 투입 부담이 단점이다.
다니기 힘든 도로 비중이 40% 가량이고 평양에서 함흥까지 자동차로 48시간 걸린다는 북한의 인프라 수준을 높일 질적 목표도 설정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1250달러에 맞는 설계기준으로 건설할 지, 4만달러 수준으로 추진할 지, 2015년 한국 인프라의 성능을 기준으로 할 지 등이 고민일 수밖에 없다. 도로, 철도, 항만 등 국토인프라의 공급 우선순위도 한국의 과거 경제성장법에 따를 지, 통일독일 경험을 벤치마킹한 신 모델을 만들어 활용할 지 고심해야 한다.
정치, 사회 등과 별도로 건설산업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과제는 4대 건설산업정책 및 4대 서비스요소, 목표 인프라 보유량 및 기간별 공급량, 인프라의 성능ㆍ질적 목표, 인프라 부문별 공급 우선순위, 기간별 투자소요 비용, 재정 조달방안 등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한 건설분야의 산ㆍ학ㆍ관ㆍ연간 공조와 준비가 본격화돼야 할 시기다.
종합적으로 볼 때 통일한반도의 국토인프라 보유량 목표는 남북한의 경제력 및 개인소득 성장속도와 연동하되, 한국의 과거 경제성장 경험을 재구성해 활용함이 최적이다. 1960년대 산업단지 및 전력, 1970ㆍ1980년대 도로 및 항만, 1990년대 주택 및 도시, 2000년대 국제공항 및 고속철도, 2010년대 지속가능한 건설로 이어지는 한국의 경제성장 경로를 따르는 방식이다. 막대한 예산낭비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과거 이미 경험한 시행착오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흥국들에게 최적의 모범사례도 꼽히지만 국내에서는 과소평가된 한국건설과 인프라 가치를 재인식하고 이를 세계적 상품으로 키우는 계기일 수도 있다.
통일은 저성장 굴레에 빠진 한국의 건설산업이 재도약할 모멘텀을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의 체질을 개선할 획기적 기회다. 독일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계획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호르스트 쾰러 전 대통령은 “독일 정치의 최대 수치는 통일 전날까지 이를 예견하고 준비를 촉구한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일찍 준비해도 늘 부족한 게 바로 통일 준비다.
제공 : 이복남 서울대 산학협력중점교수, 허준행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정리 : 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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