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그나마 안정적인 공공건설 부문의 수주 경쟁도 어느 때보다 가열되고 있다. 공공 공사는 최저가 낙찰제나 실적공사비 제도 등으로 인해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 게다가 계약 체결부터 준공 이후까지 공정별 단계마다 발주처와 건설업체 간 첨예한 이해관계 충돌 및 분쟁 발생 가능성도 크다.
실제 공사대금이나 계약조건 변경 등을 둘러싼 갈등 및 분쟁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그동안 건설분쟁 처리는 법원의 소송 절차에 의존하는 게 관행이었다. 소송에 의한 분쟁처리 과정에서 건설업계는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했고 일도양단(一刀兩斷)식 결론에 따른 후속 입찰참가 불이익 등 후폭풍까지 감내해야 했다.
정부도 이런 폐해를 감안해 공공 공사 관련 분쟁을 합리적으로 처리할 대안으로 ‘재판을 대체하는 분쟁 해결 수단(ADR :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중 하나인 조정제도를 도입해 소송제를 보완하고 있다. 이를 담당하는 기구가 바로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이다. 다만 법령상 근거와 관련 규정이 이미 마련됐음에도 불구, 국가계약분쟁조정위의 이용률은 극히 미미하다. 정부 산하 위원회인 탓에 중립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그러나 소송과 달리 ADR제도에 있어서 분쟁은 ‘해결돼야 할 문제’이지 결코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니므로 조정위 활성화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다.
국가계약분쟁조정위 설치 근거 및 운영은
국가계약분쟁조정위의 설치 근거 및 기능의 근거법령은 ‘국가계약법’제28조∼제31조, 하위 시행령 제9장(제110조∼제115조), 하위 시행규칙 제8장(제85조∼제87조)과 더불어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 운영 규정’ 등이 있다. 이에 근거한 국가계약분쟁조정위는 기획재정부 소속으로 2012년 이전 ‘국제계약분쟁조정위원회’를 대체해 2013년 6월17일 설치됐다. 기존 국제입찰 방식에 의한 정부조달 계약뿐 아니라 국내 정부조달 계약도 분쟁 조정이 가능하게 된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작년 11월에는 설계변경, 지체상금, 계약기간 연장 등의 분쟁 사항을 추가함으로써 분쟁조정 대상도 확대했다. 그러나 국가계약분쟁조정위 운영 실적은 작년 말 기준으로 서면으로 대체한 한 차례의 본회의 개최가 고작이다.
분쟁조정위 문제점은
국가계약분쟁조정위의 문제점으로는 5가지가 꼽힌다.
첫째로 사무국이 없는 비상설 기구인 탓에 조정절차를 수동적ㆍ소극적으로 운영하는 점이다. 조정위는 재심 청구가 있는 경우 매달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조정사무를 담당할 사무국이 없어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게다가 조정에 대한 인식 부족, 조정 대상 장벽, 전담 인력 부재 등의 장애요인이 개선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조정 신청이 들어온 사안의 직접 조사를 위해 현장을 확인하는 등의 적극적 기능을 찾아보기 어렵다.
재심 구조로 인한 조정 청구 불편과 계약당사자 간 대등한 관계가 보장되지 못하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의 신청 후 결과에 불복할 경우에 한해 조정 신청이 가능한 재심 구조인 탓에 계약의 일방 당사자에게 분쟁 사안에 대한 판단을 얻어야 한다. 반면 발주자인 국가나 지자체 등은 공권력의 주체이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 간 대등한 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건설산업기본법’상 건설분쟁조정위원회처럼 이의 신청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조정 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이의 신청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관련 자료를 모두 제시하는 것은 향후 소송으로 갈 경우 소송 전략을 상대방에게 노출하게 됨에 따라 업계로선 조정 절차 이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조정 대상이 실질적으로 한정되는 점이 세 번째 한계다. 작년 11월 국계법 시행령 개정으로 설계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지체상금, 계약기간 연장 등에 걸쳐 적용 대상이 확대됐지만 위원회의 심의 의결 항목은 종합적 성격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는 정부조달 계약상 최소 금액도 공사계약은 70억원으로 제한돼 그 이하 금액 공사는 조정 절차를 이용할 수 없다.
발주자의 조정 절차 참여 기피현상도 위원회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다. 공공 공사 계약 특성상 계약 상대자에 대한 발주자의 우월적 지위를 부정하기 어렵다. 발주자는 감사 등을 이유로 조정보다 소송을 선호하며, 그 이면에는 소송 절차로 분쟁 처리가 장기화될수록 담당 공무원의 업무상 책임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이는 조정 절차 이용을 기피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조정위원 편중 현상도 문제다. 위원 구성 비율을 보면 공익대표 민간위원이 6명인 반면 현직 공무원으로 채워지는 당연직 정부위원이 8명이다. 위원회의 의사 결정이 전원 일치가 아니라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가부 동수일 때는 위원장이 결정)임을 감안하면 균형이 맞지 않다. 한마디로 조정위원은 발주자 임직원들이,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명한 고위공무원단 소속 공무원이 장악하는 구조 아래에서는 형평성 확보가 어렵다.
개선 방안은 없나
조정위는 분쟁 당사자가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건설산업에 정통한 전문가들로부터 충분한 상담까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조정 절차 수행을 위한 업무 지원에 더해 상담 및 정보 제공 등의 실질적 현안을 담당할 사무국 설치가 가장 시급하다.
‘계약조사관’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분쟁조정위는 심사ㆍ조정 요청사항에 관한 서류 제출 요구권과 관계 전문기관에 대한 감정·진단ㆍ시험 등 의뢰권, 분쟁 당사자에 대한 의견 진술 기회 제공 및 의견 청취권 등을 갖는다. 그러나 분쟁 사안이나 제출서류 내용의 객관적 확인 작업을 수행할 권한은 물론 인적ㆍ물적 시설에 대한 확인 조사 등의 권한과 관련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이로 인해 분쟁 사안의 정확한 분석이 힘들다. 이에 따라 관련 자료의 조사 및 검토를 전담할 ‘계약조사관’ 제도로 이런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
분쟁 당사자의 조정 절차 참여를 압박할 수단도 강구해야 한다. 조정 절차를 소송으로 가기 위한 탐색전 정도로 악용하는 사례를 막고 조정을 내실화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를 위해 ‘주택법’ 제46조의5 또는 ‘건설산업기본법’ 제72조 등과 같이 조정 절차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
분쟁 조정 신청 및 준비기간도 충분히 부여할 필요가 있다. 공공 공사 특성상 내용이 복잡하고 현장의 계약체결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관련해 당사자 간 협의 대상인지, 이의 신청 대상으로 봐 분쟁 조정 절차로 갈지를 판단할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 계약서 검토, 관련 자료 및 증거 수집, 증인 확보 등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계약법’, ‘조달청 공사계약 특수조건’, 나아가 서울시의 ‘공사계약 특수조건’에서도 이의 신청 및 조정 신청 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발주자를 상대로 한 계약 당사자의 권리 주장이 사실상 제약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조정 제도가 확고히 자리매김할 때까지 한시적이더라도 이의 신청 및 분쟁 조정 신청기간을 준공 후 6개월 이내 정도로 허용해야 한다.
조정 대상도 더 늘려야 한다. 건설공사 과정의 계약상 갈등이나 분쟁은 매우 다양하다. 이를 반영해 기재부가 ‘국가계약법’을 바꿔 최근 조정 대상을 확대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최소한 ‘건설산업기본법’처럼 공사계약 이행 과정의 모든 갈등이나 분쟁 유형을 망라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공공 공사와 관련한 모든 갈등이나 분쟁 해결에 조정 절차를 이용토록 유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정위원회의 위원 구성상 형평성 논란을 불식할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국가계약분쟁조정위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위원장 선출제를 개선하고 정부 위원 중심의 조정위원 편중 현상도 수술해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위원장을 민간위원 중에서 위촉토록 하고 당연직 위원인 정부 측 위원과 민간위원 간 구성 비율도 대등한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
제공=한국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연구위원
정리=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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