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락을 거듭했던 미국 달러화 가치가 올해도 약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글로벌 경제 호전에 따라 투자자들이 유럽과 일본, 신흥시장 통화로 표시된 자산으로 몰리면서 달러화에 대한 하락 압력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요 통화들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하는 ICE 달러 지수는 지난 12일 3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화는 지난해 근 10% 가까이 떨어져 연간 기준으로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투자자들은 최근 수개월간 글로벌 경제의 성장세가 뚜렷해지고 있고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달러화 약세의 배경으로 꼽고 있다.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은 아직도 경기 부양책을 취하고 있으나 시장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근 10년간에 걸친 금융완화를 곧 마감하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처럼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이런 상황 탓에 지난 수년간 미국 경제의 꾸준한 성장세, 시장을 웃도는 수익률을 기대해 달러화 자산을 사들였던 투자자들의 달러화를 보는 시각은 달라지고 있다.
다우 존스 주가지수가 기록 경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미국 증시의 주요 지수들이 지난 수개월간 해외 증시의 지수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것은 시장의 기류 변화를 가리키는 신호다.
연준의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근거로 달러화의 강세를 점쳤던 많은 투자자에게는 당혹스러운 현상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거나 물가 상승을 시사하는 뉴스에도 달러화가 오르지 못하는 점에 일부 투자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지난 12일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 물가 통계가 달러화의 상승세를 유발하지 못했고 미국 국채 수익률이 지난 수주일간 오름세를 보였는데도 달러화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단적인 실례들이다.
3억8800만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하이다르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사이드 하이다르 대표는 “달러화의 강세를 유도했을 이런 긍정적 요인들이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달러화가 유로화와 엔화는 물론 말레이시아, 칠레, 콜롬비아와 같은 신흥시장 국가들의 통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는 쪽으로 베팅하고 있다.
골드만 삭스와 JP 모건은 지난해 6640억달러였던 미국의 재정적자가 내년에는 1조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는 3.4%에서 5%로 올라가는 셈이다.
최근 달러화의 약세는 정상적인 시세의 등락을 단순히 반영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달러 지수가 2011년 저점에서 약 25% 오르자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펀더멘털을 웃도는 상승 폭으로 보고 있었다.
향후 달러화가 소폭의 추가 하락세를 보인다면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미국의 많은 대기업들에는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수출 경쟁력의 제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정책 목표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달러화의 약세는 연준에 금리를 인상할 여유도 제공한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들은 달러화의 장기 약세가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높은 주가 수준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것은 물론 연준의 금리 인상 방침에도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달러화가 급격히 하락한다면 물가상승률이 정책 당국이나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완만한 수준을 넘을 것이라는 우려를 부추길 수도 있다.
미국의 세제개혁 덕분에 기업들이 해외 유보금을 대거 본국으로 송금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힘입어 외환 선물시장에서 달러화의 순매도 포지션은 지난 12월 1개월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유로화의 강세를 점치는 베팅이 크게 늘어나면서 달러화 순매도 포지션은 다시 늘어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킷 쥐케 전략가는 통화정책이 정상에서 멀리 벗어난 유럽과 일본 같은 국가들이 투자자들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익을 좇는 투자자들이라면 “거의 뻔해진 스토리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