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토목사업을 비판할 때 ‘혈세 낭비’라는 지적은 단골손님이다. 예산을 투입해 도로를 건설했더니 지나는 차량이 별로 없다며 국민 세금만 낭비했다는 식이다.
이용량이 예측보다 적어 민자사업이 파산하거나 예산 지원이 늘어날 때도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따라붙는다.
건설사업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은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 효과를 주로 거론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효과가 줄었고,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이런 와중에 건설사업의 필요성에 반론을 달기 어려운 명제가 바로 ‘국가균형발전’이다.
SOC 예산 삭감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 역시 국토의 균형발전에 반대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계승하겠다고 천명한 노무현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분야 가운데 하나도 국가균형발전이었다.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은 초대형 토건사업이었지만, 토건사업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측에서도 크게 비판하지 않는다. ‘우리 편’이 한 사업이라는 진영논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거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균형발전을 위한 SOC 사업들이 제도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대표적인 걸림돌이 예비타당성조사다. 작년에 예타에 발목을 잡힌 사업은 40건 중 20건에 달한다. 지자체 등이 추진하는 사업 중 절반이 이 단계에서 주저앉은 것이다.
통과율 50%는 지난 1999년 예타 제도가 도입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불과 4년 전인 2014년에는 79.3%를 기록했지만, 이후 급락세를 보인 결과다.
사업 추진 여부를 경제성 위주로 결정하다 보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일례로 도로를 건설한다면 이미 개발이 많이 됐고 인구가 많은 지역은 경제성 분석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쉽다. 반대로 낙후지역은 통과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개발이 된 곳은 더 많은 인프라를 지을 수 있는 반면 개발이 덜 된 곳은 SOC 건설이 더욱 어렵다. SOC 건설에서도 지역 간 불균형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산간오지에 8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역균형발전은 교통과 교육, 문화, 의료 등 각종 인프라 구축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도 이 같은 점을 인식하고 예타 분석 대상인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가운데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평가비중을 높이고, 예타 대상사업 규모를 상향하는 개선안을 작년 8월에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후속조치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도 개선안을 내놨지만 실행되지 못했다. 게다가 환경부에서 예타에 지속가능성 지표 도입을 추진하면서 관문이 더 좁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1일 세종시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 비전 선포식에서 “중앙정부가 주도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자치단체가 정책과 사업을 기획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예타제도는 여전히 지자체 사업에 대한 지원보다는 감시에 머물고 있다. 균형발전을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생각해볼 때다.
김정석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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