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돈은 필요한 만큼 찍어내면 된다?” 미국에서 ‘이단’ 경제이론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대화폐이론(MMTㆍModern Money Theory)’이 일본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돼 MMT가 일본에서도 새로운 경제이론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로 미국에서 논의돼 온 MMT는 “자국통화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국가는 재정적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경제이론이다. 재정적자를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만큼 통화를 발행해 쓰면 된다는 이론으로 정부 지출이 세수를 뛰어 넘어서는 안 된다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을 벗어난 이론이다.
이 이론은 국가가 경기부양에 필요한 정책을 도입하는데 돈이 모자라면 일단 화폐를 발행하고, 이로 인해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 같으면 세금을 거둬들여 예방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니시다 쇼지(西田昌司) 자민당 참의원 의원은 지난 4일 결산위원회에서 “재정을 충분히 동원하지 않는 긴축재정이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조장해 재정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국통화로 돈을 필요한 만큼 발행해도 일본은 절대로 파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에 재정지출을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겸 재무상은 “재정규율을 완화하는 건 극히 위험할 수 있다”며 “일본을 MMT 이론의 실험장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재무성 출신인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MMT는) 재정적자를 고려하지 않는 극단적인 주장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정부는 불필요한 지출을 경계해야 하며 우리가 MMT 이론을 실행에 옮기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확실히 2012년 내가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할 당시 아베노믹스의 원형인 대담한 금융완화를 주장했을 때 그렇게 하면 국채가 폭락하고 엔화 가치도 폭락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채금리가 내려가고 엔화도 폭락하지 않았다”고 답변해 싫지만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이어 “경제를 성장시키고 재정도 건전하게 유지하고 싶다”면서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재정지출은 기동성있게 확실히 실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이에 앞서 지난달 19일 니시다 의원도 참석한 가운데 소비세 인상 반대론자인 후지이 사토시 전 내각관방참여와 2시간여에 걸쳐 식사를 하면서 MMT에 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니시다 의원은 “총리도 재정동원 필요성은 이해하고 있다”면서 “총리 자신이 MMT를 언급할 수 없을 테니 우리가 외곽에서 넓혀 나가야 한다”고 주위에 말한 후 이날 질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MMT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하지만 MMT 조치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건 정작 일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본은 20년전 금리가 ‘제로’수준에 달했고 일본은행이 국채발행을 늘리는 바람에 공적 채무 잔액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국민총생산(GDP)의 약 2.5배에 이른다.
그렇지만 재정적자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인플레가 일어나지 않고 채권시장에서의 자금 이탈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일본의 사례를 MMT 정책의 ‘성공사례’로 간주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재정 재건을 뒤로 미루는 대신 경제성장을 우선해 온 아베 총리의 답변에는 아베노믹스가 ‘공인’을 받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아사히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