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뭄바이에 수출 예정인 직경 15m의 대구경 쉴드TBM. |
사각 대구경 TBM. |
CRCHI 공장 내부에 진열된 점보드릴 |
가격 대비 준수한 성능으로 ‘가성비 혁명’을 이끌고 있는 중국의 정보통신(IT) 기업 샤오미(小米)에는 ‘대륙의 실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중국산=저품질’이라는 일종의 비아냥이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제품이 ‘실수’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ITㆍ전자기기를 넘어 전 세계 건설시장까지 중국 제품이 뒤흔들고 있다. 독일, 일본, 미국 기업의 전유물로 인식된 TBM(Tunnel Boring Machine)이 대표적이다. 풍부한 자본과 폭발적 수요를 무기로 압축성장에 성공하면서 세계 TBM시장의 40%가량을 이미 장악했다. <건설경제신문>은 무섭게 질주하는 중국의 ‘터널 굴기(堀起ㆍ우뚝섬)’를 확인하기 위해 세계 1위 TBM 생산업체인 중국 국영기업 CRCHI의 공장을 찾았다.
지난달 21일 찾은 중국 창사 외곽의 CRCHI(China Railway Construction Heavy Industry)사 제2공장.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아파트 5∼6층 높이의 직경 18m짜리 초대형 TBM이 눈에 들어왔다. 책에서나 봤던 사각 터널용 대구경 TBM 앞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원형 디스크커터 6개가 맞물린 사각 대구경 TBM은 ‘터널=원형’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직경 1m짜리 소구경부터 최대 18m 대구경까지 다양한 TBM 제품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TBM만이 아니다. 각종 터널공사에 쓰이는 점보드릴, 숏크리트머신과 광물 채집에 쓰이는 볼트마이너 장비, 농업용 중장비, 철도 부품 등 다양한 장비 및 생산설비가 눈앞에 펼쳐졌다. 동행한 CRCHI사의 레이팽(Lei Feng) 동북아시아ㆍ북미 영업팀장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은 무엇이든 만든다”고 말했다.
2017년 문을 연 이 공장은 66만7000여㎡의 부지에 하루 평균 20여대 이상의 TBM 생산이 가능한 대규모 설비를 갖췄다. CRCHI는 창사 외에도 중국 주요 10개 도시에 총 11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TBM 생산대수는 250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730여대의 TBM을 수주했고, 제작 중인 TBM만 300여대다. 미국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Fortune Global 500)이기도 한 CRCHI의 중국 TBM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한다. 내년부터 동아시아 각국으로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공장 입구에 진열된 중장비 대열을 벗어나자 공장 천장부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도움 없이도 수십t에 육박하는 부품을 쉴틈없이 나르고 있다. 이 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화 시스템. 공장 내부에 설치된 대부분 설비에는, 컴퓨터에 입력된 코드에 따라 설비를 스스로 조종하는 CNC(Computer Numertical Control) 프로그램이 적용돼 제품 설계부터, 가공, 볼팅까지 모두 자동으로 진행한다.
공장 자동화 시스템은 CRCHI사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주문 후 제품 제작까지 6개월여 만에 끝낼 수 있다. 출하 지연에 따른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경영전략이다. CRCHI의 양팡밍(Yang Fangming) 해외사업 본부장은 “통상 주문부터 제작까지 1년여 기간이 소요되는 독일, 일본의 TBM기업과 달리 우리는 반년이면 제품을 출하할 수 있어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전 생산라인의 자동화가 목표”라고 설명했다.
제품 제작에 필요한 부품도 전량 한곳에서 자급한다. 제작기간을 줄이기 위함이다. 생산된 수백여 가지 부품을 손쉽게 사용ㆍ보관할 수 있는 ‘지능형 물류센터’를 공장 내부에 구축했다. 지능형 물류센터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직접 부품을 관리하므로 부품 고유 코드번호만 입력하면 원하는 부품을 받아 쓸 수 있다.
판매 후 서비스(A/S)도 충성도 높은 고객사를 끌어오는 핵심 전략이다. 수백억원짜리 TBM은 커터헤드에 장착된 디스크커터를 비롯해 소모품이 많다. 정기적 점검ㆍ교체가 제품 성능을 좌우한다. CRCHI의 창사 공장에는 중고 장비를 새 제품처럼 가공하는 작업장도 따로 두고 있다. 레이팽 팀장은 “서비스 강화 차원에서 고장난 장비에 대한 보수 작업도 진행할 뿐더러 중고 장비를 매입해 리폼한 뒤 저렴한 가격으로 되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창사(중국)=이계풍기자 kplee@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