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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성찰의 노둣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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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10 07:00:17   폰트크기 변경      
 
 

‘유혹에 끌리지 말라’(성경)고 가르쳤고, ‘유혹은 구별 없이 달라붙는 버러지와 같다’(팔만대장경)며 경계하였다. 불은 쇠를 단련하고 유혹은 사람을 시험한다. 나약한 인간, 그렇다고 유혹을 악으로만 여길 일은 아니지 싶다. 유혹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되레 모든 게 다 유혹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흔들리지 않고 어찌 꽃을 피울 것이며, 견디지 않고 나무가 어떻게 뿌리 내릴 수 있으랴. 우리 역시 마찬가지, 비록 흔들릴지언정 이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어찌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으랴. 어쩌면 유혹은 기를 쓰고 피할 게 아니라, 버티고 이겨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심술 사나운 사람이 싱싱하고 아름다운 야자나무를 보고 샘이 났다. 그는 나무의 성장을 막기 위해 꼭대기에 커다란 돌은 얹어 놓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놀라면서도 의아해하고 말았다. 그 야자나무가 주위의 다른 나무들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자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돌은 나무의 뿌리를 더 깊이 땅속으로 자리 잡게 했던 거였다. 커다란 돌이 나무에는 오히려 버티고 이겨낸 도전이 된 셈이었다.

 

 인간은 흔들리는 존재다. 유혹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 유혹이 우리에게 속한다는 생각은 인간적이게 하고 더 겸손하게 만든다. 누구든 항상 유혹의 도전을 받는다는 것,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고 결코 자신할 수 없다는 것, 미움과 질투 심지어 사악과 불륜 따위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어찌 부인할 수가 있으랴.

 

 유혹에 빠져 쓰러졌다가도 견디며 다시 일어나는 일이 삶이지 싶다. 유혹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다시 다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유혹은 성숙하기 위한 윤리적 성찰이 될 수도, 자신의 나약함을 딛고 일어서는 노둣돌이 되기도 하리.

 

정태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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