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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에 자리 잡고 있는 고물상은 제법 규모가 크다. 사철 문을 닫는 일이 없는 넓은 마당에는 고철과 파지, 빈병, 헌옷 등 재활용 물품들이 잘 분류되어 쌓여 있다. 누군가에겐 필요 없는 것들도 또 누군가에겐 필요한 것들이 된다. 담벼락엔 빈 리어카 몇 대가 나란히 기댄 채 주인을 기다린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누구든, 끌고 가 쓸데없어진 것들을 싣고 오도록 빌려 주기도 한다.
신사복을 입은 한 어르신이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파란 겨울 하늘처럼 맑게 웃는다. 오늘은 세로줄무늬가 선명한 짙은 남색 양복 차림이다. 바지엔 다리미 줄이 빳빳하게 나있고 흰 와이셔츠에 붉은 넥타이, 모자까지 한껏 멋을 부렸다. “와우, 할아버지 멋재이. 오늘 패션 최고인데요.” 걸음을 멈추고 엄지척을 하자 맞은편에서 파지를 정리하던 할머니 한 분도 고개를 들고 씩, 웃는다. 언제 누구와 만나도 따뜻하고 정겨운 곳이다.
문득 며칠 전 TV 속 남자 연예인이 산길을 걷던 모습이 떠오른다. 동행한 PD가 왜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 가느냐고 물었다. 이 차림이라면 산이 아니라 시내로 가야하는 것 아니냐, 용도가 다른 옷이지 않느냐, 뭐 그런 뜻이 담긴 말이었던 것 같다. “입을 시간이 없어서요.” 연예인의 대답은 간결했지만 그는 산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예를 다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새소리 속으로 걸어가는 그의 통 넓은 바지와 자켓이 신선했다.
비싸서 좋은 것이 아니라 정성이 든 매무새는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즐겁게 한다. 언제나 깨끗한 신사복 차림으로 파지를 줍는 어르신을 보며 처음엔 참 엉뚱하다 여겼다. 하지만 그분은 파지를 줍고 고물상을 들락거리면서도 신사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늘 환하게 웃으며 만나는 이들 모두를 기분 좋게 한다. 나도 오늘 늘어진 바지와 티셔츠를 벗고 입을 일 없던 옷을 꺼내 입을까. 출근을 한 듯 저녁밥을 지으면 분명 밥맛이 더 좋아질지도 몰라.
권애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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