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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한겨울 새벽, 네거리 모퉁이 한갓진 곳의 인력시장이 떠오른다. 구멍을 숭숭 뚫어 놓은 네모난 페인트 통 안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모닥불이 그것이다. 남인 듯 남이 아닌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곁불을 쬔다. 몸은 모닥불을 향한 채 초점 흐린 눈은 연신 발길 뜸한 봉고차를 기다린다.
시인 백석(白石)은 ‘새끼 오라기도 헌신짝도 소똥도 삭신창도 개이빨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마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을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쪼인다’라고 했다.
백석의 모닥불은 잘 타는 것 안 타는 것 가리지 않고 모두 다 태운다. 타고나면 한 줌 재가 되고 마는데, 잘나고 못난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말이다. 불을 쬐는 사람도 쩨쩨하게 편을 짓지 않는다. 어른이든 아이든, 지체가 높고 낮거나, 큰 개 작은 개 구별하지 않고 자리를 내어 준다. 모닥불을 쬐는 손은 평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인이 살던 시대와 매우 다르다. 땔감은 잘 살펴 가며 넣어야 한다. 시커멓고 찐득한 연기를 울컥 토해내는 스티로폼은 사절이다. 온몸이 오징어처럼 쭈글쭈글 오그라드는 페트병도 사양해야 한다. 모닥불도 손사래 칠 만큼 폐기물로 넘쳐나는 풍요가 능사만은 아니다. 가릴 게 많고 삼가야 할 것도 많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에게 모닥불 곁을 내 주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라도 네 편, 내 편을 엄중하게 가른다. 늦게 오는 사람을 위해 한 발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한 발 더 다가선다. 길 가던 붓 장사도 땜장이도 모닥불을 보고 가까이 가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백석이 피운 모닥불이 사위어 간다. 세상의 따스함이 사라지고 있다.
조이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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