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마음의 창] 못난이라고요?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0-12-15 07:00:30   폰트크기 변경      

 

 
 

“못난이들입니다. 이런 걸 보내도 될지 모르겠어요.” K 선생님은 못난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미안해했다. 이틀 뒤 귤이 도착했다. 귤의 상태는 자유로웠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제주의 비바람을 견디며 자기 깜냥대로 자란 귤은 개성이 넘쳤다. 백화점에 잘 진열된 맞춤 상품이 아닌, 시골 장에 올망졸망 놓여있는 자유분방한 물건을 연상케 했다.

 

  유자만큼 큰 게 있는가 하면 탱자보다 작은 것도 있었다. 선명한 노란색을 지닌 것과 까만 점박이도 있었다. 매끈하거나 울퉁불퉁한 것, 단단하거나 말랑한 것, 두껍거나 얇은 것,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었다. 어떤 건 파릇한 잎을 달았는가 하면 시르죽은 것도 있었다. 아직 새파란 잎이 남아 있다는 건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사람들의 보살핌과 관심을 받으며 자란 귤은 아니었다. 하우스 귤은 크기도, 두께도 일정하고 맛 또한 비슷하다. 마트에서 귤을 사면 하나같이 같은 얼굴인 것처럼 말이다.

 

  중간쯤 크기의 귤을 골라 껍질을 벗겼다. 못생긴 겉모양에 비해 살은 선명한 주홍빛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입안에 쫙 퍼지는 신맛과 단맛의 조화로움, 일품이었다. 덜 익은 걸 억지로 숙성시켜 밍밍하다거나 너무 달지 않았다. 자연의 빛을 몸 안에 들여 골고루 익은 제대로 된 맛이었다. 순식간에 몇 개를 홀랑 까먹었다.

 

  내친김에 한 바구니 정도의 귤을 깠다. 그리고 냄비에 설탕과 함께 넣고 조리기 시작했다. 귤 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 시간 정도 은근하게 졸이자 윤기 자르르한 잼이 되었다. 유리병에 나눠 담아 지인에게도 보내고 일터에서 직원들과 나눠 먹었다. 즐거워하는 그들을 보는 내 기분은 더 달콤했다. 못난이 귤은 아낌없이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전해주었다. K 선생님이 보낸 건 못난이 귤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그 안에는 제대로 익은 사람의 인정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장미숙(수필가)



〈e대한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