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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팥죽 두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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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17 07:00:18   폰트크기 변경      

 

 
 

밖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입맛이 없고 찬도 마땅치 않다며 나가자는 아내의 제안이다. 코로나 역병으로 답답한 심사도 달랠 겸 집을 나선다. 아내가 길라 잡은 곳은 한적하고 허름한 식당이다. 음식이 나와 먹고 있는데, 두 사람이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팔순이 넘은 노인네를 부축한 중씰한 사내다. 눈매와 하관이 빼쏜 걸로 봐 모자지간이지 싶다.

 

 건너편에 자리를 잡는다. 아들은 노인네에게 무얼 드시겠느냐고 묻는다. 노인네는 아무거나 먹겠다고 한다. 차림표를 보던 아들은 팥죽 두 그릇을 시키자, 노인네는 손사래를 치며 한마디 보탠다.

“이 봐요, 주인장. 어른 거 한 대접에 아이 거 한 그릇 줘요.”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일까. 사내가 슬며시 미소를 베어 문다. 주인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알았다는 듯 주방으로 향한다. 주인장은 하나는 큰 대접에 하나는 작은 그릇에 팥죽을 담아 내온다. 노인네는 큰 대접을 아들에게 내밀고 당신은 작은 그릇을 끌어당긴다. 그러자 아들은 큰 대접을 엄마에게 밀고 작은 그릇을 자기 앞으로 잡아당긴다.

 

 아들은 엄마에게 아이겠지만 엄마가 아이 그릇을 또 끌어당긴다. 서로 아이가 돼 몇 차례 승강이를 벌인다. 결국 작은 그릇이 엄마 차지가 된다. 그때까지 따끈한 팥죽에선 다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엄마와 아이는 간간 눈을 맞추며 팥죽을 떠먹는다. 누가 아이이고 누가 어른인지 잠시 헷갈리는 순간이다.

 

 창밖 하늘은 차갑고 무겁지만 건너편 밥상은 다습고 사랑옵다. 젓가락질을 멈춘 채 남편은 건너편에 눈길을 두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묵연히 바라본다. 싸락싸락 싸락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어머니 기일을 며칠 앞둔 날 저녁이었다.

 

정태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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