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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그 겨울, 붕어빵 같았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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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23 08:46:53   폰트크기 변경      
 
 

친구와 붕어빵을 사서 동대문 지하상가로 내려가고 있었다. 눈이 많이 와서 손발이 꽁꽁 언 상태로 종종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갑자기 목덜미가 홱 꺾이는 바람에 계단에서 휘청한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에 앉아있던 노숙인이 길게 늘어진 내 목도리를 끄집어 당긴 것이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불끈 화가 난 나는 소리를 질렀다. 허름한 외투를 몇 겹이나 걸치고 목장갑을 낀 손으로 내 목도리를 붙잡고 있는 그 무례한 사람은 육십 대로 추정되는 여자였다. 여자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찬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 이상하게도 화가 가라앉고 말았다.

 

 나는 여자가 붙들고 있는 목도리를 힘주어 빼냈다. 그리고 몇 발 내려갔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서 다시 계단을 올라갔고 친구는 짜증 내며 날 따라왔다. 여자 앞에 섰을 때,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사과하는 표정 같기도 했다. 나는 목도리를 풀어서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내가 건넨 목도리를 냉큼 받아서 자신의 목에 친친 감았다. 만족했는지 목도리를 몇 번 톡톡 치던 여자는 고맙다고 말했다.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지하상가를 걷던 친구의 목소리에 짜증이 실렸다. 도대체 왜 그런 거냐고. 그럴거면 처음 당겼을 때 줘버리지 그랬냐고. 나는 친구의 손에 들려있던 붕어빵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난 뺏기는 기분이 싫고 저 여자는 빼앗은 기분이 싫을 테니까. 주고받는 게 좋잖아.” 그날 친구는 만 원짜리 주황색 목도리를 사서 내 목에 둘러주었다. 이것도 뺏기면 죽는다는 말과 함께.

 

 올이 나간 오천 원짜리 싸구려 목도리를 처음 보는 여자에게 건넸더니 만 원짜리 예쁜 목도리가 생겼던 그 날. 눈이 많이 와서 마냥 신났던 그 겨울, 붕어빵 같았던 우리. 올겨울엔 누가 누구의 목에 온기를 건네고 있을까. 부디 누구라도 그래 줬으면 좋겠다. 남도에는 아직 눈이 오지 않았다. 서울은 안녕하신가.

 

이은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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