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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창] 이웃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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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7-11 04:00:15   폰트크기 변경      

101동 출입문을 나와 계단을 내려서면 곧바로 놀이터다. 바닥에는 알록달록 우레탄이 깔려 있다. 놀이터라는 게 항용 그렇듯이 그네, 정글짐, 미끄럼틀 하나씩에 말머리 사자머리 유아용 시소 몇 개가 고작이다.

정오쯤부터 그늘이 지면, 할머니나 엄마 손에 이끌린 유아가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마친 아이들이 몰려 나와 시냇물에 조약돌 굴러가는 소리처럼 닥다글댄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그네다. 더 타고 싶어 하는 작은 아이를 달래고, 큰아이가 양보하면서 차례를 지키는 작은 질서를 배운다.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몸을 튼튼히 하고 사회성도 키운다. 아장아장 걸음마 하는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바로 호기심 천국이다.

우리 아파트에는 이런 놀이터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세 군데나 있다. 대신 경로당이나 노인을 위한 정자가 없다. 그만큼 아파트가 젊다는 증거다. 젊은 아파트인 만큼 이웃도 젊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어른도 거의 다 젊은 부부다. 나처럼 머리 허연 사람 보기가 흔치 않다.

내가 사는 동(棟)에서 아파트 정문까지 걸어 나오는 데 시간이 가외로 더 걸린다. 놀이터 세 군데를 지나치며 노는 아이 구경하고, 유모차에 탄 아기와 눈 맞춰 손을 흔들다 보니 그렇다. 아기가 낯선 할아버지와 눈을 맞추고 방싯 웃거나 꽃봉오리 같은 손을 흔들면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한다. 그뿐이랴. 보도에 굴러 나온 밤톨만 한 돌이라도 있을라치면, 금덩이 본 듯 얼른 주워 꽃밭 깊숙이 던지느라 발걸음이 더디다.

약속 시간보다 넉넉하게 나섰는데도 놀이터 아이들 구경하느라 조금 늦을 것 같다.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머리가 허옇게 센 할아버지가 바쁠 게 무에 있으랴. 젊은 이웃 그늘 덕에 남의 귀한 손자 손녀 재롱을 실컷 보았으니 그게 어딘가.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는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는 손주들 때문에 늦었다고 너스레를 떨 생각이다.


조이섭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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