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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태원의 작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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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1-06 13:10:05   폰트크기 변경      
이두삼 한국건강연구소장

한국건강연구소장 이두삼 / 사진 : 연구소 제공


지난 10월 1일 인도네시아 한 축구장에서 13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을 때 많이 놀랐다. 성난 관중 수천 명에게 최루탄을 난사한 경찰의 어이없는 행위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런 압사 참사는 상대적으로 선진국에서 보기 드물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니까 그런 압사 사고는 최근에 일어난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가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인 서울 한복판에서 전근대적인 대형 압사 사고가 터진 것이다. 희생자들은 꽃다운 나이의 20대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들은 미래의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도 있는 고귀한 존재였다. 너무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이다.

내가 아는 한 젊은이는 참사 당일 핼러윈을 즐기러 이태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후 6시 21분 이미 이태원에 있던 친구에게 영상 통화를 받았다. 영상 속 엄청난 인파에 놀란 그는 농담조로 “야, 저러다 지반이 무너지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선릉역으로 갔다고 한다.

적어도 참사 4시간 이전에 대형 참사 징조가 보였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하인리히(Heinrich)의 1:29:300 법칙이 있다. 큰 재해 이전에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하고, 운 좋게 지나간 사건이 300번이 있다는 놀라운 통찰이다. 즉 큰 재해 이전에는 크고 작은 조짐들이 명백히 나타난다는 말이다.

사실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 최초의 112 신고가 오후 10시 15분이었고, 그 이전에는 단 한 통의 신고 전화도 없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 의식’을 질타하는 취지의 글을 쓰고자 했다. 4시간 이전에 이태원에 있던 친구나 영상으로 본 젊은이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더욱이 압사 사고 골목을 힘겹게 통과한 사람들은 압사의 위험을 몸소 체험했다. 그 수가 수천 명에 달했을 것이고, 그 현장을 간접적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수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사 이전에 11통의 112 신고 전화가 왔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대한민국의 시민 의식이 아직 죽지 않았다. 11명의 작은 영웅들이 대참사의 징조를 느끼고 신고했다. 얼마나 놀라운 예지력과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인가! 그들은 의인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밝히는 등불이다. 만약 112 신고 전화가 더 많았다면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사실 112 신고 전화는 번거로운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는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11명의 작은 영웅들을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했다. 이들은 일반인과 무엇이 달랐을까.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정치력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선진국의 국민들은 남에 대한 배려가 생활화가 되어 있다. 예컨대 눈을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고, 상대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양보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여성과 아이,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양보와 배려는 거의 종교와 같다.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가. 엘리베이터에서 남을 위해 단 몇 초도 기다리지 않고, 여성과 아이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신사는 보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앞차가 늦게 출발하면 경적을 마구 울려댄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유튜브 국뽕 채널을 보면 대한민국이 위대한 선진국으로 많이 묘사된다. 이들 동영상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높은 정신 문화에 깜짝 놀란다. 과연 그럴까.

8년 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안전불감증이 낳은 비극이지만 필자는 생존자의 비율에 특히 주목했다. 전체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중 성인 비율이 70%였고, 아이들은 겨우 23%에 불과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선장이 제일 먼저 탈출했고 승무원들도 선두에 섰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110년 전 영미권은 어떠했는가? 1912년 4월 14일 대서양에서 2206명을 태운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 우리를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생존자 비율이다. 여자는 74%, 아이는 52%의 높은 생존율을 보인 반면 남자는 20%에 불과했다. 생존의 기회가 가장 컸던 선장과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영미권은 ‘여자와 아이 먼저(Women and children first)’라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을 따랐고,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역으로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다. 대한민국에는 11명의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그들의 작은 수고가 156명의 고귀한 생명을 살릴 수도 있었다. 미래의 대통령,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살릴 수도 있었던 위대한 작은 몸짓이었다.

타이타닉호와 이태원의 영웅들은 명확한 특징 두 가지가 있다. 우선 그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아픈 사람은 남을 신경 쓰기가 힘든 까닭이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평소 실천이다. 남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몸에 밴 사람은 절체절명 위기 순간에 빛을 발한다. 살신성인하는 위대한 영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후일담을 들어보면 거의 동일하다. “평소에 예의가 바르고 남에 대한 배려와 양보가 남달랐다!”

우리는 11명의 작은 영웅들을 찾아내 그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포상해야 한다. 그래야 세월호, 이태원과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진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국가적 재난에는 적지 않은 후유증이 따른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같은 트라우마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남 탓하며 남을 무분별하게 비난하는 마녀사냥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스스로 아프게 만들고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최대한 나쁜 뉴스를 보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좋다. 독서나 산책, 혹은 복식호흡을 하는 것은 최고의 치료제이다. 더불어 반신욕이나 사우나를 하면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되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된다. 그게 우리도 작은 영웅이 되는 길이고,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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