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통 토공 전문건설회사
2006년 기술연구소 설립 대혁신
‘한국판 실리콘밸리’ 판교에 거점
장비접근경보ㆍ충돌방지시스템 등
삼성ㆍ현대ㆍ쿠팡 등서 널리 사용
과장급 이상 100% 안전자격증
기술력 발전해야 해외서 경쟁력
싱가포르에 ‘베이스캠프’ 추진
사우디 네옴시티 진출에 도전
강일형 영신디엔씨 대표는 45년 전통의 토공 전문건설회사를 건설현장의 디지털전환(DX)을 주도하는 건설IT회사로 키워냈다. 강 대표가 기초 말뚝시공 현장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개발한 ‘파일 관입ㆍ리바운드량 자동측정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안윤수기자 ays77@ |
[대한경제=김태형 기자] 혁신기업은 땅(시장)을 탓하지 않는다. 유니클로를 설립한 야나이 다다시는 “사양 산업은 없고, 사양 기업만 있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영신디엔씨는 ‘전문건설=단순시공’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국토교통 분야 혁신기업이다. 45년 전통의 토공 전문건설회사가 2006년 기술연구소를 만들어 ‘건설IT(정보기술)’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하더니, 2015년에는 본사를 아예 ‘한국의 실리콘밸리’인 판교로 옮겼다. 이 회사의 장비접근경보시스템(KIGIS)과 중장비 충돌방지 영상인식시스템(아이뷰 플러스)은 건설회사보다 전자와 제조, 유통 회사들이 먼저 알아봤다.
삼성전자는 2020년 10월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 공장의 지게차 700여대에 영신디엔씨의 안전기술을 탑재했다. 쿠팡도 전국 물류센터의 지게차 500여대, 한국공항공사는 김포ㆍ청주 등 전국 공항의 지게차 200여대에 영신디엔씨 기술을 적용 중이다. 이밖에도 CJ, 인천항만공사, 롯데글로벌로지스, 한화케미칼, 현대제철 등이 폭넓게 쓰고 있다. 삼성ㆍ현대 등 대형 건설사들도 바통을 이어받았다.
영신디엔씨를 ‘별종’으로 만든 인물은 1996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는 강일형 대표다. 세밑에 경기 하남 본사에서 만난 그는 건설현장의 디지털전환(DX)을 강조하면서, “건설의 판을 바꾸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강 대표는 서랍에서 길다란 직원 명부를 꺼내 보였다.
“자동차 운전하려면 면허가 있어야하는 것처럼, 안전 전문회사에 다니려면 안전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려면 건설안전기사나 산업안전기사 둘 중 하나는 꼭 따야 해요.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안전에 대한 기본 마인드가 필수조건이죠.”
전체 100여명의 직원 명부 옆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자격증 이름과 취득일자가 적혀 있다. 인터뷰에 동석한 최평호 전무(미래전략본부장)는 “제도 시행 4년여만에 과장 이상자는 100%, 전체 직원의 70% 정도가 안전자격증을 취득했다”고 귀뜸했다.
강 대표는 건설장비와 IT기술을 융합한 ‘건설장비 자동화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디지털 불모지로 통했던 건설현장에 ‘건설 자동화’와 ‘안전 솔루션’이라는 특화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산업포장을 받았고, 2021년에는 ‘혁신기업 국가대표 1000’에 선정됐다.
-왜 전문건설회사를 건설IT기업으로 바꿨나
영신디엔씨는 경기지역 토공 1위, 국내 단지 건축토공 1위다. ‘영신(당시 영신토건)에 맡기면 걱정없다’는 말을 들을만큼 제대로 일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하도급 신세였다. 대기업이 꼭 필요한게 뭔가, 뭘 팔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건설IT를 아이템으로 잡았다. 기존 건설현장의 작업방식에서 탈피해 ICT(정보통신기술) 융합기술이 필요하다고 봤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토공만으로는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힘들다. 하드웨어 기반의 회사에 디지털과 소프트웨어를 입혔다. 창업 10년만에 기술연구소를 만들었고, 2014년에 첫 매출이 나올 때까지 계속 투자만했다. 본사 사무공간도 기술연구소가 있는 미래전략본부가 가장 넓다. 앞으로 계속 인원을 늘려갈거다.
영신디엔씨가 건설IT회사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지난 2014년 이라크 항만 건설현장에서다. 세계에서 가장 긴 이라크 남부 바스라주 알포 방파제(Al Faw Grand Port, 15.5㎞). 이 공사를 수주한 대우건설은 거친 파도와 깊은 수심을 뚫고 수중 방파제 설치작업을 진행했다. 당시만해도 방파제 사석 정지작업을 위해선 잠수부가 측량장비를 메고 수중작업이 설계대로 진행되는지를 수시로 체크했다. 이 때문에 작업시간과 비용이 늘어나고, 안전사고 위험도 컸다. 대우건설은 영신디엔씨의 머신가이던스(MG) 장비를 장착한 굴착기를 현장에 투입했다. 굴착기의 버킷(삽)과 암(팔)에 지형의 경사와 면적 등을 측정하는 센서를 달고, 운전석에는 설계도와 버킷 위치를 보여주는 모니터를 장착했다. 덕분에 잠수부 도움 없이도 수중작업을 고정밀 시공했고, 공기(工期) 단축과 원가 절감으로 대우건설을 놀라게 했다. 6년반의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대우건설은 이후 발주된 총 3조원 규모의 신항만 개발 후속사업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그리고 영신디엔씨는 2015년 본사를 판교로 옮겼다.
-왜 판교였나
명색이 건설IT기업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인력이 많은 곳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8년 간의 판교 시절에 회사가 많이 성장했다. 매출이 700억원대에서 1300억∼1400억원대로 두배 늘었다. 좋은 개발자가 많이 들어왔고, 산자부ㆍ국토부ㆍ과기부 등 공무원들도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세 확장으로 사무실이 비좁아졌고, 2022년 본사를 하남으로 옮겼다.
-여전히 스마트건설을 ‘돈 먹는 하마’, ‘성과없는 투자’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스마트건설은 수단일뿐 목적이 아니다.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영신의 스마트 건설기술은 크게 건설자동화와 안전시스템으로 나뉜다. 고정밀 GPS와 각종 센서를 건설장비에 장착해 별도의 측량지원없이 장비조정원이 모니터를 확인하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머신가이던스(MG)와 초광대역통신 기반의 지능형 접근 경보시스템과 충돌방지 영상인식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접근경보시스템은 초창기엔 장비 설치에만 반나절, 엔진을 통제하는 MC(머신 컨트롤)시스템은 2주일 넘게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MG는 2시간, 접근경보시스템은 10분이면 끝난다. 중대재해가 잦은 기초 말뚝 시공현장에 쓰이는 ‘파일 관입량ㆍ리바운드량 자동측정시스템’은 10m 이내 거리에서 ±1.0㎜ 이하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돈 먹는 하마가 아니라 일의 효율과 안전을 돕는 똑똑한 디지털 비서다. 우리 기술연구소는 인건비는 물론이고, 본사관리비까지 따로 낼만큼 자립에 성공했다.
-스마트건설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나
기업들이 기술투자에 대한 확신을 심어줘야 스마트건설이 발전한다. 국토부에 ‘스마트건설국’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문제다. 무작정 사후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안전교육을 민간이 아니라 정부가 근로자에 제공해야 한다. 근로자 생각이 바뀌어야 현장이 더 안전해진다. 쓸만한 스마트건설기술에 대해선 과감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정부가 판을 제대로 깔아줘야 기업들이 신나게 개발하고 투자한다. 국내 건설기술이 발전해야 해외공사 경쟁력도 덩달아 올라간다.
-글로벌 복합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작년에 약 2200억원을 수주했는데, 올해는 목표를 2000억원으로 낮췄다. 그만큼 경기가 안좋다. 그래도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싱가포르를 해외진출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만들어 영신의 기술을 수출하는데 힘쓰겠다.
-100년 기업으로 가기 위한 미래 전략은
‘AI를 접목한 무인화’가 영신디엔씨가 꿈꾸는 미래다. 네옴시티에 우리 기술이 적용될 날이 분명 올거다. 당장은 시공관리와 안전관리 플랫폼을 양대축으로 스마트 건설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축적된 각종 데이터를 모아서 ‘실수방지시스템(Fool Proof System)’을 구축해야 한다. 숙련도가 낮은 작업자라도 건설장비를 적절히 다룰 수 있도록 해 품질ㆍ효율ㆍ안전을 높일 수 있는 이른바 ‘바보도 안전한 시스템’이 단기 목표다.
<강일형 대표는?>
대기업과 맞짱…시대를 앞서가는 ‘작은거인’
강일형 영신디엔씨 대표 |
김태형기자 kth@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