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셋을 둔 아버지는 삼촌들의 아들을 사랑했다. 당신 자식한테는 보여준 적 없었던 사랑과 신뢰의 눈빛으로 그 애들을 바라보았다. 쉬지 않고 음식을 하면서도 엄마는 기가 죽었다. 쓸모없는 나는 눈치만 보았다. 부지런히 심부름하던 언니가 나를 불러 오락실에 데리고 갔다. 우리는 보블보블 오락을 하면서 괴물로부터 서로를 지켰다.
차례를 지낸 후 우리 항렬의 사촌들이 주르륵 섰다. 세배를 시작하면 어른들은 지갑을 꺼냈다. 중학생이었던 언니는 천 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천 원, 미취학이었던 여동생은 천 원, 다른 집 여자 사촌들도 천 원을 받았다. 미취학이었던 내 여동생보다 어렸던 남자 사촌들은 전부 만 원.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애도 만 원. 남자라서 만 원.
나는 이상하게 그때의 일이 잊히지 않는다. 부당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아본 것 같다. 그 후로 할머니 집에 가는 게 싫어졌다. 아픈 척도 하고 떼를 쓰기도 했다. 의외로 아버지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 이유 역시 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제사나 명절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몸이 되었지만, 세뱃돈 차별의 기억은 약간의 흉터로 남아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세뱃돈의 액수와 유형도 변했다. 오만 원권 지폐가 생기면서 만 원짜리 지폐는 약소해졌다. 현금 찾는 일이 번거롭기도 해서 계좌이체를 하거나 모바일 카드를 선물하기도 한다. 절이라는 게 익숙하지는 않아서 세배를 하는 입장도 받는 입장도 약간은 어색하다. 그러나 그 문화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배를 받을 때마다 어른이라는 자각을 할 수 있기를, 존경 받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이은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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