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공정거래위원회와 사법기관이 월례비와 관련해 법률적 검토를 철저히 하고 있다. 크레인 소유자와 운전자는 노조로 조직되어 있지만 사업자이기도 하다.”
“현재 (월례비 등을) 법으로 환수시키고 처벌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며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으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불법적으로 돈을 뜯어가는 독점적 횡포와 관행을 근절시키고자 당국이 나서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원 장관은 “건설노조와 관련해 2월 중으로 범정부대책을 국무회의에 보고한 뒤 국민께 발표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각종 불법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 및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에 강력히 대응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지난해 9월 비속어 논란으로 20%대 중반 이하로 떨어졌던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12월 40%대까지 치솟은 가장 큰 이유는 노조 대응이었다. 한국갤럽이 12월 둘째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긍정평가 이유 중 가장 많은 24%가 노조 대응을 꼽았고 공정ㆍ정의ㆍ원칙이 12%로 뒤를 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노조 대응에 가장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곳은 아마도 건설업계일 것이다. 만나는 건설업계 인사들은 “속이 시원하다”, “건설현장의 큰 우환이 없어졌다”, “이참에 노조의 불법행위를 뿌리째 뽑아야 한다” 등등 환영일색이다. 그동안 노조의 불법행위로 인한 건설업계의 피해상황을 살펴보면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건설업계, 노조 불법행위 피해 막대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2월30일부터 올 1월13일까지 대한건설협회 등 12개 건설 분야 유관협회 등을 통해 실시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피해 사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494개 현장(290개 업체)에서 2070건의 불법행위가 접수됐다. 조사에서는 118개 업체가 최근 3년간 월례비를 계좌로 지급한 내역 등 입증자료를 제출했는데, 피해액이 1686억원에 달한다.
업체 1곳당 피해액이 최소 600만원에서 최대 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타워크레인 월례비와 강요에 의한 노조전임비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노조 불법행위로 인한 공사지연이 불가피해 329개 현장에서 최소 2일에서 최대 120일까지 공사지연을 겪어야 했다.
건설현장의 피해가 누적된 데는 불법에 엄정해야 할 공권력이 노조 앞에서는 마냥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촛불집회로 탄생해 지난해 5월9일까지 5년 동안 정권을 쥐었던 문재인 정부의 친노조정책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서울 서초갑)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2598건이었던 건설현장 집회ㆍ시위는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3720건으로 늘어났고 2018년 7712건으로 전년 대비 배 이상 증가했다. 2019년에는 1만2553건으로 1만건을 넘어섰고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에도 1만3128건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늘었다. 2021년에는 1만3068건으로 집계돼 문 정부 출범전인 2016년과 비교해 5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법적 제재를 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조은희 의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건설현장을 비롯한 전국에서 집시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인원은 549명으로, 이 중 353명이 검찰에 송치됐지만 구속송치는 5명에 그쳤다. 2020년에는 357명이 송치돼 단 4명만 구속됐다. 그동안 “건설노조의 불법시위를 신고받고 건설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시위를 해산하려하지 않고 주변에서 멀뚱히 보고만 있다”는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불평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달라진 윤 정부, 그런데도 불안하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노조의 건설현장 불법행위에 강력 대처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는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대책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민관협의체를 구성한 후 지난주까지 다섯 차례 회의를 가졌고 전국 5개 국토관리청에 전담조직을 마련해 현장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경찰청은 올 6월까지 200일 특별단속기간을 정하고 업무방해, 폭행, 갈취, 채용강요, 불법시위, 보복행위 등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 중이다. 지난 1월18일 기준으로 총 186건 929명을 대상으로 수사에 착수해 이 중 23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7명을 구속시켰다. 890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 중이다.
고용부는 노동조합 회계관련 서류의 비치ㆍ보존의무를 들여다보며 노조 회계의 투명성 강화를 모색하고 있고 공정위는 건설기업에 압력을 행사해 기존 사업자와의 계약을 해지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등에 대해 감시와 제재를 확대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윤 정부의 노조대응을 격하게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급함과 불안감이 겹치는 모습이다. 윤 정부의 드라이브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춤할 경우 노조의 건설현장 불법행위는 다시 살아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거 때마다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노조의 특성상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은 불안요소다. 윤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도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강력대응을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여야 정권에 따라서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대응 수위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건설업계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현 정부에서 불법행위에 강력 대응을 했다고 해도 친노조 정부가 들어서면 분위기는 급반전될 수밖에 없다.
-법제화를 통한 불법행위 근절 절실
건설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이 아무리 강력해도 제도 및 법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불법행위들이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피해 나간다면 공권력이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 및 법제화를 통해 건설현장이 노조 불법행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법개정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제화는 개별법의 개정을 통해 노조의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차단하는 방법과 가칭 건설노조 불법행위근절법과 같이 한시적인 특별법을 만드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며 “지금의 여건상 특별법보다는 개별법의 개정이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선행돼야 하는데, 여기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서다.
건설업계는 건설노조 불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손을 봐야 하는 법률로 우선 노동조합법, 채용절차법, 건설기계관리법 등을 꼽는다.
현행 노동조합법에는 부당노동행위가 규정돼 있는데, 여기에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를 신설하고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넣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또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가 노조의 강요에 의한 경우라면 사업주를 면책하는 규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로는 특정 노조에의 가입을 강요하거나 가입된 노조의 탈퇴를 강요하는 행위, 해당 노조에 소속하지 않은 근로자에 대해 부당한 차별적 조치나 지위를 약화시키는 조치를 하도록 요구하는 행위, 근로자의 채용과 관련해 불공정한 합의 및 협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 소속 조합원 채용강요 또는 장비사용 강요와 이와 관련한 금품요구ㆍ사업장 점거ㆍ협박ㆍ폭행ㆍ공갈ㆍ태업 등으로 사용자의 조업을 방해하는 행위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채용절차법에는 현행 상시 30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하는 범위를 상시 5인 이상으로 확대하고 채용강요 등의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현행 3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기계관리법에는 건설기계 조종사의 월례비 등 부당금품 수수ㆍ약속ㆍ요구시 조종사 면허를 취소하고 부당금품 제공자와 수령자 모두 징역형 또는 벌금형의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해 부당한 금품의 요구와 지급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국토부 소속 지방국토청의 조사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사법경찰권의 부여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현재와 같은 건설현장 출입권만으로는 노조의 불법행위 조사에 한계가 따르므로 보다 강력한 조사권한을 부여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조의 불법행위로 자재반입이 방해되거나 공사기간이 지연되는 등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노조 불법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필 hy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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