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심화영 기자] 금융분야를 출입하며 정책당국에서 가장 많이 받은 자료는 ‘정책금융’과 ‘서민금융’에 대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저신용 서민의 필요에 부응하는 정책금융상품을 잘 설계해야, 취약계층의 약한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아 금융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어붙였던 정책금융상품들은 대체로 흥행하지 못했다. 소득조건이 맞지 않거나 금리 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이유는 다양하다.
고금리시대 ‘서민을 위한 금융’을 정부가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취약계층은 조건이 맞지 않는 서민정책금융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정부는 응급조처로 ‘구제금융’을 실행한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의 반복이다. 경기침체기마다 은행이 ‘공공재’로 불려진다면 정책금융은 말 그대로 ‘혈세’다. 항생제 처방식 구제금융보다는 서민들이 시장 안에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절실하다.
최근 부동산시장에는 역전세난으로 인한 일명 ‘돈맥경화’ 위기가 고개를 들고 있다.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임차인을 구해 ‘부채 돌려막기’를 해 온 임대인도, 보증금을 돌려받아 이주를 해야 하는 세입자도 모두 밤잠을 설친다. 매매시장 뿐 아니라 전세시장이 금리변동의 직격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는 레버리지가 극대화된 전세구조에선 걷잡을 수 없는 신용경색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새해벽두부터 1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발급금액은 월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은 세입자가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가입하는 보증상품이다. 집주인에게 HUG가 보증금을 돌려받는 회수율이 지난해 23.6%에 그치자, 정책금융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보증금 반환을 안하는 임대인을 처벌하는 법을 강화해야지 왜 혈세로 전세보증금을 지원해 주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임대차3법’ 같이 시장을 왜곡하는 악법은 당장 폐지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공정한 룰이 적용되는 제도와 법이 마련돼야 한다. 경매시 채권추심이 가능한 은행 근저당권을 후순위로 하거나, 주택감정가의 적정수준 이하로 대출과 보증금 한도를 설정하도록 하는 등의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공공의 임차보증금 반환채권 매입이나 무분별한 전세대출 규제 등 의 정책을 수립하거나 적극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달 30일 신청접수가 시작된 특례보금자리론 열풍이 뜨겁다고 한다. 그러나 대출규제 ‘최후의 보루’라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무력화하는 정책금융상품은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리스크가 곳곳에 상존하는 시기에 서민정책금융이 ‘따뜻한 금융’에만 그쳐선 안 된다. 소상공인 금융지원프로그램이나 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원리금 깎아주기도 좋지만,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등 실효성 있는 정책금융을 발굴하고 보완하는 것이 급선무다.
심화영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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