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지난달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선 ‘은행권 경영ㆍ영업 관행ㆍ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가 열렸다. 한 달 후인 3월 22일엔 4차 회의가 진행됐다. 금융당국은 오는 6월 말까지 은행을 뜯어고칠 결론을 내기 위해 엄청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상반기 도출될 개선안은 ‘이자놀이’에 안주하게 만든 은행의 과점구도를 깨는 데 맞춰져 있다.
은행개혁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고금리로 서민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은 역대급 실적과 함께 성과급ㆍ퇴직금 ‘돈잔치’를 벌였다. 이는 역대급 수익의 근본 원인이 은행산업의 경쟁 부재에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예금과 대출을 늘리기 위한 은행 간 경쟁이 없다면 예대금리차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이자수익을 늘려 은행의 배를 불려준다.
결국 정부가 메스를 꺼내들었다.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손쉬운 ‘고금리장사’를 벌이지 못하게 하겠다며 은행권 경쟁 촉진과 구조개선에 나섰다. 핵심은 시중은행 과점체제를 ‘완전경쟁체제’로 바꾸겠단 것. 국내 은행 수익의 90% 이상은 이자에서 나온다. 금융권은 드러내놓고 내색은 않지만 “은행이 원래 그런 일 하라고 만든 거 아니냐”며 관치금융 불만이 상당하다.
은행은 금융회사가 민간기업임을 강조힌다. 그러나 은행이 그동안 빨대 꽂고 이자 불려가며 성과급 잔치한 것을 부인할 순 없다. 다만 간과하지 말 것은 은행의 공적 기능이 큰 만큼 안정성 또한 중요하다는 점이다. 은행은 일종의 사회안전망이다. 정부는 은행의 구조 재편을 추진하되, 시장 원리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금융안정성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해칠 수 있다. 단순 경쟁을 넘어선 해법을 고민해야 되는 이유다. 최근 정부는 은행의 경쟁 촉진을 위해 ‘스몰라이선스’나 ‘챌린저뱅크’를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정부가 벤치마킹할 사례로 지목한 미국의 대표적 챌린저뱅크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지난 11일 파산했다.
오히려 지금은 금융리스크 관리에 더 치중할 시기가 아니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쟁 촉진정책으로 은행의 리스크가 커지면 안정성이 부각되는 5대 은행으로의 쏠림이 더 커질 수도 있다. 40여년 된 특화은행이 36시간 만에 무너진 이번 SVB 사태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은행 수 늘리기’만으로는 경쟁 촉진보단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실효성 논란도 있다. 실제 인가가 나더라도 대형은행과는 경쟁이 쉽지 않다. 시중은행의 평균 자본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적어도 수조원의 자본이 든다. 정부는 다시 한번 큰 틀에서 금융업을 바라볼 일이다. 무조건적인 과점깨기는 은행이 목표로 하는 메가뱅크의 꿈을 접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3만2661달러다.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초일류국가 도약을 위해선 금융산업 선진화와 글로벌화는 필수다. 이번 은행의 돈잔치에 괘씸해하고 회초리를 들어야한단 여론도 만만찮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건전성과 무관한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진짜 경쟁을 유도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1995년 4월 방영된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에피소드 중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모습. /사진:The Simps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