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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적 대는 한국경제…‘퍼스트무버’ 못키운 60년의 호된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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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4-10 05:00:14   폰트크기 변경      
[파워인터뷰]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국가위기 해법과 科技 비전]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의 엔진
실패와 도전, 사라지면 안돼
인구 리스크 대응 R&D 전략 절실
테헤란에 한국형 실리콘밸리 조성
7월 세계한인과기대회 준비 만전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의 엔진이자, 글로벌 공공재”라고 강조했다. /안윤수 기자 ays77@


[대한경제=김태형 기자] 기민한 모방으로 성공담을 써왔던 한국 경제가 추격자의 습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올해 정부 R&D 예산은 처음으로 30조원을 넘겼고, 국가 총 R&D 비용은 무려 102조원에 달한다.

기술혁신을 주제로 쓴 책 ‘축적의 길(이정동)’은 “(4차 산업혁명은) 최소 60년 전에 출발한 별빛이 한발씩 공간을 건너와 지금 눈에 보이게 된 것”이라며 빙하기와 해빙기, 밀물과 썰물의 반복처럼 오랜 축적의 과정을 강조했다. 그 중심에는 ‘축적된 시행착오 경험을 담는 그릇’, 즉 사람이 있다. 결국 지금의 위기는 추격자의 타성에 젖어 다양한 실패에서 체득한 ‘창의적 개념설계’ 능력을 갖춘 퍼스트 무버(first moverㆍ선도자)를 키우지 못한 지난 60여년의 청구서인 셈이다.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은 9일 〈대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의 엔진이자, 글로벌 공공재”라며 “‘성공률 100%’의 국가 R&D 시스템에선 과학기술 발전의 연료인 실패와 도전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66년 세워진 과총은 400여개 학회와 200여개 산업계 단체 등 총 607개 단체를 회원으로 둔 500만명 과학기술인을 대표하는 단체다. 해마다 100억원 안팎의 과학기술진흥기금을 회원사에 배분하는 지원기관 역할도 수행한다.

지난달 임기 3년의 과총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지난 57년간 배출된 21명의 회장 가운데 유일한 토목공학 전문가다. 교통부ㆍ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초대 김윤기 회장(와세다대 건축학과) 이후 과총 회장은 주로 화학, 전자, 의학 전문가들의 도맡아왔다. 낯선 스펙의 신임 회장에게 한 명예회장은 ‘토목도 과학인가’라고 물었을 정도다. 이 회장은 이에 “수백㎞ 고속철도의 허용 침하량이 겨우 30㎜다. 웬만한 성인이 한 번만 점프해도 파이는 깊이다. 그만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고, 이걸 설계하는 사람이 토목기술자(civil engineer)”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비인기 종목’이던 우주분야 연구에 오랫동안 매진해 온 국내 대표 우주건설 전문가로, 국제우주탐사연구원 원장과 Moon Village Association(MVA) 집행이사를 역임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 재임(2014∼2017) 때는 당시 미국 항공우주국(NASAㆍ나사)에도 없던 최대 규모의 달 탐사 기술ㆍ장비 시험관(지반열 진공 챔버)을 만들었다.

취임식이 독특했다

메타버스 우주인이 등장해 사회를 보고, AI(인공지능) 작곡가가 만든 노래와 과학 판소리가 취임식장에 울렸다. 아바타는 사람의 눈동자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장시간 진행이 어려운데 행사 2시간 동안 무리없이 사회를 봤다. 무엇보다 한국주재 130여개 대사관 가운데 41개국 대사관에서 취임식에 와줬다. 과학기술 외교의 힘을 보여준 장면이다. 개발도상국가를 대상으로 한 ODA(공적개발원조)가 주로 개발사업이라면, 과총의 400여개 학술단체를 통한 민간 차원의 새로운 협력모델을 만들 수 있다. 과학기술이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겠다.

첫 세계한인과학기술자대회를 준비 중인데.


세계 각지 한인 과학자 3000여명을 초대하는 국제행사로 7월4∼7일 서울에서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방미 중 재미 한인 과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회 개최를 약속하면서 공식화됐다. ‘2030년 우주와 미래과학기술 전략회의’라는 주제로 과총과 19개 재외한인과학기술자협회가 주관하고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진행된다. 단순히 과학자들의 연구성과를 교류하는 자리를 넘어 미래 과학기술 발전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게 목표다. 해외 유명 우주 기업인들도 초청할 계획이다.

‘과학기술 중심국가’ 시대에 과총의 역할은.

한국은 초고령화, 인구 절벽, 지역 소멸 등 3대 인구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응하는 국가 R&D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 기술 패권 시대에는 기술 주권 확보가 국가 운명과 안위를 책임진다. 과학기술 선도국가, 즉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전략 수립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국가출연연구기관과 함께 70조원 규모의 R&D를 투자하는 민간을 함께 끌어들여야 한다. 600여개 학술단체를 회원으로 둔 과총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다.

과총의 숙원사업인 ‘사이언스 플라자’(과학기술회관 신관)를 개관했다.

사이언스 플라자는 시민들이 공유하는 멋진 아고라(광장)가 될 것이다. 새로 생긴 많은 회의 공간과 넓은 갤러리는 과학과 문화, 예술이 융합하는 국가 대표급 과학 문화광장으로 키우겠다. 아울러 기존에 입주했던 학술단체 외에도 다양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지원기관들이 포진하게 된다. 과총이 기업과 정부의 가운데서 과학기술정책의 교량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강남 테헤란밸리에 만들겠다고 했다.

강남역부터 삼성역까지 4.1㎞ 거리가 테헤란밸리의 대동맥이다. 이 지역 골목만 141개에 달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지원하는 벤처기업이 4000여개가 있다. 밴처캐피털 100곳 중 60여곳이 몰려 있고 과총과 발명진흥회, 공학한림원, 코엑스까지 과학기술단체도 다 있다. 과총이 적극 나서서 우리나라 벤처 클러스터의 원조인 테헤란밸리의 정체성을 되찾고, 이들을 융합해 얼라이언스를 만들어보겠다.

전미과학진흥협회(AAAS)와 같은 권위있는 단체가 될 수 있을까.

1848년 창립된 AAAS는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발행하는 미국과 세계의 과학계를 대표하는 단체다. AAAS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과학진흥 및 과학교육을 촉진하는 것이다. 유럽 최대 과학축제인 ‘에든버러 국제과학축제’처럼 한국에도 성인들이 참여하는 제대로 된 과학기술 축제를 만들고 싶다. 테헤란밸리가 그 장소가 될 것이다.

국내 대표 우주건설 전문가다. 현재 달, 화성 등 우주기지 건설기술은 어디쯤 와 있나.

우주건설 관련 기술개발은 국내에서 건설기술연구원(건설연)이 유일하게 진행하고 있어서 비교 대상이 없다. 미국의 나사, 유럽의 ESA 등 각국에 우주국들이 있는데, 건설연의 ‘지반열 진공 챔버’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검증시설이다. 달의 지상환경을 그대로 재현해서, 달 탐사 기술 장비들을 검증할 수 있는 장비와 검증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 달’로 생각하면 된다. 전통 우주분야라고 할 수 있는 발사체나 위성분야와 달리 달 지상 탐사, 특히 우주 건설분야는 나사 등을 포함한 유수의 우주국들도 최근에 연구를 시작했고, 우리가 확보한 연구성과물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처럼 세계 우주국들이 달 지상 탐사 및 우주기지 건설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한국도 연구 인프라를 모으고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안윤수 기자 ays77@


[이태식이 꿈꾸는 미래는]

“하이퍼루프로 한국을 초연결 도시로 만들고 싶어”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대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싱가포르처럼 도시국가로 만드는 게 남은 꿈”이라고 했다.

그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실패로 구도심이 황폐화되는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국을 ‘초연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현재 토목기술로 서울-부산을 2시간45분까지 만들었지만, 하이퍼루프와 같은 초연결 교통수단은 지역 간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꿈의 이동 수단으로 불리는 하이퍼루프는 진공튜브 내에 차량을 띄워 마찰을 최소화해 시속 1000㎞가 넘는 빠른 속도로 이동시킨다는 콘셉트의 기술이다. 일론 머스크가 투자한 ‘보링 컴퍼니’ 등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에 초고속 지하터널을 뚫어 도심의 교통혼잡을 해결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은 “지금은 지역축제 가려면 왕복 8시간 운전해 2시간 놀고 온다”며, “서울-목포 20분, 목포-부산 8분처럼 하이퍼루프로 전국의 주요 도시를 순환하는 초연결 수단이 상용화되면 지역마다 특색을 유지하면서 지역경제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태식 회장은 누구?]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안윤수 기자

1953년생으로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건설경영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대한토목학회 회장,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오랫동안 우주건설 분야연구에 매진해온 탓에 ‘꿈을 좇는 과학자’로 불린다. 건설연 원장 시절 우주기지 건설에 월면토를 활용하자며 3D(3차원) 프린터를 설계하고, ‘인공 달’ 챔버를 구축했다. 평소 토목공학에 대해 “시민에게 1조5000억원짜리 자가용(지하철)을 만들어주는 작업”이라며, “과학기술은 시민을 황제로 만드는 ‘시민황제학’”이라고 자랑한다.


글=김태형 기자 kth@

사진=안윤수 기자 ays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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